“죽음은 그 날개로 파라오의 평안을 방해하는 자들을 죽이리라.”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을 발굴하려는 순간 섬뜩한 경고가 새겨진 점토판을 발견했다. 그는 경고를 외면했고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를 무시한 대가를 치렀다. 카터를 후원한 조지 캐너번 경은 무덤 발굴 1년 뒤 모기에 물린 상처가 덧나 사망했다. 발굴이 완료된 1929년까지 작업에 관여한 11명이 죽는 등 희생자가 계속 늘어 총 사망자가 60여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한 것은 정작 발굴의 핵심인물인 카터는 저주와 상관없이 천수를 누렸다는 점이다. 파라오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발굴성과는 대단했다. 7년간 발굴한 3,500여점의 유물 가운데 최고는 단연 황금 마스크다. 망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이 가면은 얇은 금판을 망치로 두드려 제작한 것으로 11㎏에 달하는 순금이 투입됐다. 파란색의 청금석과 노란색의 순금이 줄무늬를 이루는 단발 모양의 모자가 파라오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무덤의 주인공 투탕카멘은 기원전 1333년 즉위해 10년간 이집트를 다스리다 18세에 요절한 파라오다. 투탕카멘의 원래 이름은 투탕카텐이다. 투탕카멘의 아버지인 아멘호테프 4세는 여러 신을 믿는 이집트의 전통을 깨고 유일신인 아텐 신을 섬기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아케나텐으로 바꾸고 자식의 이름도 투탕카텐으로 지었다. 아케나텐 사후 이집트는 다신교 사회로 돌아갔고 투탕카텐도 투탕카멘으로 돌려졌다. 투탕카멘은 살아 있는 아문 신이라는 뜻이다. 투탕카멘은 일찍 죽어 자손도 없고 업적도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 파라오였기에 그의 무덤은 수많은 피라미드가 도굴범에게 약탈당한 것과 달리 온전하게 보전될 수 있었다.
투탕카멘 무덤에서 나온 높이 28.5㎝의 얼굴 조각상이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470만파운드(약 69억원)에 낙찰됐다. 이집트 정부는 이 조각상이 1970년대 룩소르 북부 카르나크 신전에서 도난돼 밀반출된 것이라며 경매중단과 반환을 요구했지만 크리스티 측은 소유권에 문제가 없다며 버텼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투탕카멘에게 물어봐야 할까. 이번 경매로 그의 평안이 방해를 받았을지 아니면 자신의 조각상이 그렇게 큰 금액에 낙찰돼 기분이 좋았을지 궁금하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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