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고니’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여자와 놀고 권투를 즐기고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시는 것이 기본 규칙이다. ‘마하고니’를 찾은 지미 마호니는 최고의 향락을 누리다가 마침내 돈이 떨어지자 ‘돈이 없는 것은 세상에 가장 무서운 죄’라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큰 줄기는 이렇다. 오페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인하여 사회가 번영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담아 자본주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국내 초연작으로, 오는 11~14일 공연된다.
작품에서 ‘마하고니’ 도시를 만들어낸 인물 중 한 명인 레오카디아 베그빅 역을 맡은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을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극 중 베그빅에 대해 “오페라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일관성이 확실한 캐릭터”라며 “이기적이고 사악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악랄하다”며 “아마 이 작품에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악한 역할이 모두 다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베그빅은 백재은이 지난 5월 ‘윌리엄 텔’에서 맡은 윌리엄 텔의 부인 헤트비히 역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캐릭터다. 그는 “‘윌리엄 텔’에서는 남편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지고지순한 여성을 표현했지만 베그빅은 악한 것을 즐긴다”며 “악역을 하면서 느끼는 새로운 매력이 있다”고 밝혔다. 백재은은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폭넓은 활동을 펼쳐왔으며, 국내에서는 2008년 국립오페라단 ‘카르멘’에서 카르멘 역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오텔로 ‘데스데모나’, 피가로의 결혼 ‘케루비노’ 등 다양한 역할을 선보였다.
백재은은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매력으로 음악과 소외효과를 꼽았다. 백재은은 “그동안 들어보지 않은 새로운 음악이지만 감탄하게 되는 곡들이 있다”며 “소외효과도 인상적인데 배신·매춘에 대한 내용을 아름다운 선율로 부르고 ‘너는 내가 굉장히 믿는 친구’라는 내용이 나올 때는 불협화음이 나온다”고 말했다. 소외효과란 극 중 등장인물과 관객과의 감정적 교류를 막는 효과를 말한다. 이 오페라를 쓴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관객들이 주인공에 동화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효과를 없애기 위해서 소외효과를 사용했다. 그렇기에 곡이 중간중간 끊어지거나 불협화음이 나타나게 했다. 베그빅 역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작품을 깊이 공부했다는 백재은은 “브레히트가 소외효과를 쓴 이유는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마하고니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보다는, 이렇게 돈에 미쳐 살면 마호니처럼 죽는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백재은은 작품에 대해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오페라는 아니지만 이런 세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싶다면 꼭 오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제 한국 관객도 이런 작품을 가져와도 되는 수준으로 올라온 것 아닌가 싶다”며 “이런 문을 통과해야 현대 오페라의 세계에도 빠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완성된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탓에 히틀러가 가장 싫어하는 오페라로 꼽혔고 나치가 상연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20세기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힌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