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병력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상륙하시는 대로 저희와 동조자들이 내홍에 나설 것입니다.’ 네덜란드 오라녀공 빌헬름이 1688년 7월10일 자로 받은 편지의 핵심내용이다. 발신자는 7명. 귀족은 물론 런던 대주교도 포함된 7명이 보낸 편지는 한 마디로 네덜란드 군대를 이끌고 영국을 접수해달라는 청원이었다. 발각되면 반역자로 몰려 극형을 받을 수도 있는 편지를 은밀하게 보낸 이유가 뭘까. 영국이 가톨릭 국가로 되돌아가고 국교도(성공회)나 신교도는 설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국왕 제임스 2세(55세)의 득남 소식이 영국 귀족들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재위 3년째인 제임스 2세가 전횡을 부려도 반대파는 참았다. 후사가 없는 제임스 2세가 자연사하면 왕위계승 서열 1위인 장녀 메리 공주나 그 남편인 빌헬름공(서열 3위)이 왕좌에 오를 것이라고 믿어왔다. 빌헬름공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 귀족들은 제임스 2세의 아들을 영국인들은 가짜로 생각한다는 내용도 넣었다. 정말 제임스 1세의 늦둥이 아들은 가짜였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제임스 1세는 프랑스 망명 중인 1692년에도 딸을 낳았다.
진실이 무엇이든 편지를 받은 빌헬름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장인인 제임스 2세에게 득남 축하편지를 보내는 한편으로 2만여명의 군대를 모았다. 영국 왕위에 관심을 갖고 있던 빌헬름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계획이었으나 편지대로 최소 병력만 뽑았다. 제임스 2세에 대한 외국 지원군을 사전에 막는 외교방책까지 마련한 빌헬름의 군대는 11월 중순 도버해협을 건넜다.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제임스 2세는 딸과 사위에 의해 쫓겨나고 영국은 군주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국가로 나아갔다. 윌리엄 3세라는 이름으로 아내 메리와 공동국왕에 오른 빌헬름공은 권력을 의회에 내줬다. 영국인들은 여기에 ‘명예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예혁명과 함께 기억할 만한 이름이 또 있다. ‘이모털 세븐(Immortal Seven).’ 빌헬름공에게 편지를 보냈던 7명의 귀족과 성직자들을 영국사는 ‘불멸의 7인’으로 기억한다. 주목할 대목은 이들의 정파가 달랐다는 점이다. 의회파인 휘그 계열이 4명, 왕당파인 토리 출신이 2명, 중도 1명이었다. 내전과 공화정, 왕정복고를 거치며 극명하게 대립했던 이들은 영국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판단에 따라 여야를 초월해 머리를 맞댔고 결과적으로 명예혁명을 이끌어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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