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반도체 핵심소재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통제 강화 조치는 두 가지 국제규범과 협정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는 대량살상무기(WMD) 등의 확산 방지를 위한 다자간 수출통제 규범이고, 둘째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하나로 세계 상품무역을 규율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1조 안보 예외 조항이다.
먼저 세계 다수 국가는 다자간 수출통제체제 규범에 따라 WMD와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 및 재래식 무기와 이들 무기의 개발 및 생산 등에도 이용 가능한 소위 전략품목, 즉 민군겸용의 이중용도품목(물품·기술·소프트웨어)에 대해 허가제를 통해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다자수출통제체제는 현재 30~40여개 국가 간의 비공식적 협의기구로서 4개 체제별로 수출통제 지침과 통제목록을 제정해 참가국에 자발적인 이행과 집행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권고사항일 뿐 구체적인 이행은 참가국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다시 말해 다자체제 수출통제 규범의 성격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사협정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은 전략품목의 수출통제 대상국을 모든 국가로 하되 4개 다자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27개국에 대해서는 수출통제 국제규범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백색 국가(white country)’로 분류해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수출허가 심사를 면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부터 백색 국가로 분류됐는데 앞으로는 한국을 백색 국가그룹에서 제외해 이번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해서는 건별로 수출허가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일본 정부가 허가를 거부하면 사실상 수출을 금지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국제법적 근거는 GATT 제21조의 안보 예외 조항이다. 이는 GATT의 자유공정무역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WTO 회원국들에 중대한 국가안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포괄적으로 무역제한 조치를 허용하는 조항이다. 이 조항에 의거해 WTO 회원국은 핵물질을 포함한 전략품목에 대해 수출입을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개 시 자국의 중대한 안보이익에 반한다고 간주되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서 ‘중대한 안보이익’이란 국가안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자국의 이익을 말하는데 무엇이 자국에 ‘중대한 안보이익’인가는 각 회원국이 스스로 결정하는 사항이다. 따라서 발동국가는 그 조치에 대해 사전에 상대국에 통보할 필요가 없고 그 조치의 정당성을 증명할 필요도 없으며 WTO 또는 그 회원국들로부터 사전승인이나 추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를 최혜국대우원칙 위반을 이유로 WTO에 제소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승소할 가능성도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GATT 제21조의 안보 예외에 의거 중대한 안보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무역제한 조치는 그간 10여건의 GATT 분쟁패널 판결에서도 정당성이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일본의 수출통제 조치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은 무엇일까.
첫째는 조속한 시간 내에 양국 정상회담을 여는 것이다. 이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문제의 확산을 방지하고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둘째는 국가안보 목적의 수출통제 강화이다. 특히 대일 전략품목에 대해서는 수입 후 최종 용도와 최종 사용자를 철저히 관리해 당해 품목이 북한 등 WMD 확산국으로 이전되지 않도록 재수출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유엔의 대북제재 조치를 철저히 준수해 국제사회로부터의 불신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소재부품 산업의 육성 및 경쟁력 강화이다. 1965년 이래 54년간 700조원에 달하는 대일 누적적자를 발생시킨 주원인이기도 한 소재와 부품의 지나친 대일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관련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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