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충무실. 타원형의 긴 테이블에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어느 때 보다 촘촘하게 자리했다. 문 대통령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최태원 SK 그룹 회장, 오른쪽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맞은편에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앉았다. 이날 간담회에는 총 자산 10조원 이상의 대기업 30개사 총수 및 주요 최고경영자(CEO) 들과 경제 단체 4곳의 수장들이 참석했다.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하게 마련된 이날 간담회는 지난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개최된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와는 형식부터 완전히 달랐다. 문 대통령은 마치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듯 회의 대형으로 자리를 마련, 총수들과 밀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간담회의 사회와 진행 역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호승 경제수석이 직접 나서서 맡았다.
김 실장은 문 대통령이 입장하기에 앞서 기업인들에게 “일본 조치에 직접적 당사자인 LG, SK, 삼성에 먼저 말씀을 부탁 드리고 국내서 부품을 생산하는 금호와 코오롱도 말씀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현대차, 효성에 소재 관련한 말씀 듣고 일본의 여러 네트워크 갖고 있는 (기업들) 말씀을 듣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의 추가 보복 조치까지 염두에 두고 이번 간담회가 마련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어 문 대통령이 노타이 차임으로 입장하며 바로 간담회가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통해 “갑작스런 요청이었는데 이렇게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오늘은 여러분들의 말씀을 듣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제 인사는 되도록 짧게 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역력히 묻어났다. 문 대통령은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한 각오’ ‘전례 없는 비상 상황’ ‘막다른 길’ 등 이번 사태의 엄중함을 드러내는 발언들이 문 대통령 입에서 쏟아졌다. 문 대통령은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산업구조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부만으로는 안 되고, 기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특히 대기업의 협력을 당부드린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의 이날 간담회에 앞서 기업들은 전날 밤까지 내부 회의를 통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거나 제시할 의견들을 긴밀히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본과의 사업 관계 등을 감안해 이날 기업인들의 발언은 비공개로 이뤄졌다. 간담회 종료 후 청와대가 어느 수위까지 이번 간담회의 내용을 공개할지는 미지수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업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며 “민감한 이야기까지 공개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해법을 찾기 위해 일본 출장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에서는 윤부근 부회장이 대신 참석했고, 현대자동차 정의선 수석부회장, SK 최 회장, LG 구광모 회장 등이 나왔다.
롯데도 해외 체류 중인 신동빈 회장 대신 황각규 부회장이 참석했다. 아울러 포스코, 한화, GS, 농협, 현대중공업, 신세계, KT, 한진, 두산, LS 등 자산 규모 상위 기업인들이 총출동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제외한 주요 경제단체장들도 자리했다.
정부에서는 홍 부총리를 비롯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에선 노영민 비서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이호승 경제수석, 주형철 경제보좌관, 고민정 대변인 등이 나왔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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