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고 안 사고 안 갑니다(#BOYCOTT_JAPAN #nojapan)”
일본의 갑작스런 수출규제 발표로 대한민국이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압박하겠다는 속셈에 분노한 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맞서고 있는데요.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실시간으로 불매 제품 및 기업 리스트가 업데이트되고 있고 SNS에는 불매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이 넘칩니다. 일본 여행 취소 인증샷도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죠.
때아닌(?) 레알 한일전, 그런데 일본은 갑자기 왜 한국에 수출규제를 선언한 것일까요?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생산 과정에 없어선 안 되는 핵심 품목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는데요. 특히 두 품목의 수입 비중을 보면 90% 이상 일본 제품에 의지하고 있어 물량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태입니다.
그동안 절차 간소화 품목에 해당해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이들 물품들은 지난 4일부터 일본 당국의 승인 절차를 거친 후에야 수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승인 심사하는 데만 평균 3개월이 소요되고 길어지면 6개월까지도 기다려야 합니다. 8월부터는 이들 3개 품목뿐 아니라 다른 1,100개에 이르는 전략 물자도 일일이 허가를 받아 수입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한국은 안보 우방국으로 불리는 미국·독일·프랑스 등 27개국과 함께 ‘화이트 국가’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어 해당 품목들을 쉽게 수입할 수 있었지만, 이번 수출 규제의 하나로 한국이 명단에서 빠질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죠.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대체 일본은 왜 갑자기 이 시점에서 규제를 꺼낸 걸까요?
사실 당사자인 일본은 규제를 덜컥 던지면서도 정작 속 시원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일 간의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는 언급만 했을 뿐이죠.
이번 조치의 주된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은 ‘일본강점기 강제 노역자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입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 노역 피해자 4명과 일본기업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 간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노역 피해자들이 1인당 1억원의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 화근이 됐다는 거죠. 일본은 1965년 맺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 개인 청구권은 사라졌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우리 대법원이 이를 부인하는 판결을 내리며 ‘신뢰가 깨졌다’는 겁니다.
아베 총리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언급하며 사실상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시사한 바 있죠.
일각에서는 오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압승을 위해 펼친 아베 총리의 액션’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던 지난 4일은 마침 일본 참의원 선거 공시일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죠.
하지만 이번 조치에 숨겨진 진짜 속내는 결국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과시하려는 일본의 ‘파워게임’에 있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입지는 ‘재팬 패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력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이런 소외된 일본의 입지를 회복하기 위한 한 수라는 거죠. 실제로 아베 총리는 오사카에서 최근 열린 G20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외교력을 과시하려 했지만 갑작스레 진행된 ‘남북미 판문점 회동’으로 인해 ‘아베 패싱’의 굴욕을 받았죠. 게다가 G2 국가로 성장한 중국에게 밀리고 경제적으로 일본을 바짝 추격하는 한국의 존재감까지 더해져 일본이 지난 40여년간 지켜온 동아시아 경제 패권 국가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경제 부흥책인 ‘아베노믹스’로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아베 정권이 ‘무역 분쟁’이라는 카드로 다시 아베노믹스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전략인 겁니다.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에 대해 한국은 여러 차원에서 반격하는 모습입니다. 우선 국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을 불매하는 운동이 일파만파 확산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본기업 제품 리스트’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는데요. 불매운동의 대상인 일본 기업을 정리한 것으로 자동차, 시계, 의류, 카메라 등 제품이 나열돼있습니다.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은 매출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죠. 특히 일본자본과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에 올라 억울한 기업들이 뭇매를 맞는 상황까지 펼쳐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일본 정부가 90일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했던 한국인에 대해 ‘비자발급강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화난 네티즌들이 일본 여행 자제를 독려하는 등 반일 감정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 역시 가만 있지는 않겠다는 모습입니다.
산업부는 “자유무역 정신에 기반한 WTO 협정 위반이라며 불공정 무역행위로 제소할 수 있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는데요. 다만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가 통상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인) 이유로 취한 경제보복 조치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기에 우리 정부가 감정만 앞선 채 섣불리 나선다면 처참하게 패배할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매년 1조원 정도 집중투자 준비 중”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지난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인해 국내 관광, 숙박 업계가 역대 최악의 적자 7조 5,000억원를 떠안았던 고통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이는데요.
다만 이런 조치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반도체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당장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 총수들이 직접 일본 출장길에 오르며 해법을 찾는 상황이죠.
이런 상황은 일본 기업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대입 수입 규모 1위 품목은 반도체 제조장비인데요. 이 말을 뒤집어보면 한국 수출이 막힐 경우 일본 역시 대체할 만한 시장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일본 무역진흥기구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중 일본 진출 기업들의 흑자 비율이 가장 큰 국가입니다.
쉽게 말해 일본 경제와 한국 경제는 공생관계이며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가 자신의 살을 갉아 먹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지금으로선 한국과 일본이 경제동맹국의 위치를 자각하고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윈윈(Winwin)입니다. 하지만 브렉시트와 미중 무역전쟁에서 보이듯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평화로운 국제 질서는 현재 빠르게 해체되는 중입니다. 이런 경제 분쟁이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죠.
또다시 벌어질지 모를 경제적 분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우리 정부가 제대로 된 국내 투자와 기술 개발에 집중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정가람기자·정민수인턴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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