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이날부터 시행되면서 회사 곳곳에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 펼쳐졌다. 기업에서는 관리자급 임직원을 중심으로 언행을 조심하며 ‘첫 타깃’으로 주목을 받지 않을까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반면 갑질 등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가능성이 큰 젊은 직원들은 수평적 문화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과연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울경제가 이날 취재한 각 기업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특히 회사 내 상사들의 태도 변화가 두드러진다. 통신사 대리 류모(31)씨는 “차장·부장급이 갑자기 친절하게 변했다”며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한 상사는 평소 본인 기준으로 말을 안 듣는 후배한테 ‘일 폭탄’을 던지기로 유명했는데 갑자기 자중한다”고 말했다. 금융사 사원 권모(31)씨도 “후배들 실수를 발견하면 한숨을 쉬거나 혀를 차는 등 눈치를 주던 부장이 조금 바뀐 것 같다”며 “메신저를 통해 개인적으로 주의를 주거나 따로 불러 타이른다”고 말했다. 간부직을 맡은 40대 직원들은 자칫 ‘갑질’로 비칠 수 있는 행동에 주의하고 있다. 한 대기업 그룹사의 직장생활 15년 차 팀장은 “후배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게 이전과 달리 조금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일단 법이 시작된 만큼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끈끈한 조직문화’는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간부로 근무하고 있는 40대 남성은 “한 달에 한 번 회식비가 나오는 것을 이제는 술자리가 아니라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데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 측도 조심하는 모습이다. 화장품 제조사에 근무 중인 김모(28)씨는 “사내 게시판에 고충상담 절차가 게시됐다”며 “회사 홈페이지에 괴롭힘 제보 메뉴가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괴롭힘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 만큼 본사는 물론 지사에 나가 있는 임직원을 고려해 주의해야 할 언행에 대한 강의를 추가로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과 관련한 진정이 전국에서 7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첫 진정은 한국석유공사 관리직 직원 19명이 이날 오전9시 울산고용노동지청의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냈다. 이들은 “석유공사에서 20~30년간 일했는데 지난해 3월 새로운 사장 부임 후 전문위원이라는 명목으로 2~3등급씩 강등돼 월급이 깎였고 청사 내 별도 공간에 격리돼 업무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간 MBC의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서울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이들은 지난 2016~2017년 입사 후 계약 만료로 퇴사했다가 법원의 판단으로 근로자 지위를 임시로 인정받았지만 업무에서 격리당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이마트 포항이동점지회는 “관리자로부터 연차사용을 강제하고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스케줄 갑질을 당했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원에게 막말과 고성 등 인격모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법 시행을 계기로 공공기관·시민사회단체 차원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앞으로 한 달간을 ‘대표이사 갑질 집중 신고기간’으로 정해 사장의 갑질을 제보받겠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에게 신고해야 하는 현행법으로는 회사 조직을 장악한 대표이사의 괴롭힘은 막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시·서울교통공사·서울교통공사노조는 다음달 21일부터 격주 수요일마다 지하철 역사 내 직장 내 괴롭힘과 권리 구제를 상담할 ‘직장갑질 119상담소’를 운영한다. 을지로입구역·구의역·천호역·가산디지털단지역 등 12개 역에서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자치구 노동복지센터가 출장해 직접 상담한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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