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신기술 출시를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제도다. 1월17일 본격 시행에 들어가 그동안 금융·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등에서 규제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목표 80% 달성’ 등 자화자찬할 정도인지 의문이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체감도가 낮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표 사례로 꼽은 도심 내 수소충전소만 해도 그렇다. 현대차 탄천 충전소는 부지 문제로 무산될 위기이고 조건부 허가가 난 계동사옥 충전소는 아직 문화재청이 심의 중이라고 한다.
특히 카풀·숙박 등 공유경제와 원격의료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은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중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진 원격진료 사업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도록 규정한 의료법에 가로막혀 있다. 인터넷은행의 증자를 어렵게 만드는 대주주 자격 심사 등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는 방치되고 있다. 블록체인 송금같이 혁신적 금융실험이나 진짜 풀어야 할 서비스는 여전히 규제 대상이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 등 이른바 ‘개·망·신법’에 막혀 있는 게 현실이다. 샌드박스 제도가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래서야 어떻게 혁신 서비스가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규제 샌드박스가 건수 위주로 흐르지 않으려면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중국이 스타트업에 대해 ‘선 허용, 후 규제’를 통해 유니콘을 대거 키워낸 것처럼 우리도 신산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을 과감히 열어주기 바란다. 이제 규제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