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상 출신으로 삼성전자(005930) 반도체에 연구원 보조로 입사해 28년 만에 삼성의 별인 상무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바로 양향자(52)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를 자식같이 여기며 평생을 살아왔기에 양 원장은 1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일본의 수출보복에 유독 할 말이 많았다.
이날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만난 양 원장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위기’보다는 ‘기회’ 쪽에 더 무게를 뒀다. ‘쫓는 나라(한국)’와 ‘쫓기는 나라(일본)’의 불가피한 ‘기술 패권’ 전쟁에서 도리어 ‘연대’와 ‘협력’ ‘교육’을 강조했다.
“일본의 소재 수출제한은 한국의 ‘반도체 패권’을 막으려는 산업 측면의 정밀타격입니다.” 양 원장은 현재 한일 갈등을 역사문제보다는 산업 측면에서 접근해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반도체 지일파(知日派)’로 꼽히는 그는 “반도체 산업은 지난 1952년 미국에서 시작해 1970년대까지 미국 패권 시대를 이어갔고 이후 일본이 도시바·히타치·산요 등의 회사를 전면에 내세워 기술 패권을 차지하게 됐다”며 “한국은 1983년 2월8일 이병철 회장이 2·8도쿄선언을 시작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후 1980년대 후반 기술 패권을 가져와 1993년 이후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27년째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지켜온 한국과 일본의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게 양 원장의 설명이다.
소재기술 국산화를 선제적으로 준비하지 못한 국내 기업과 정부에 대한 비판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준비를 하지 못해 당했다는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며 “꾸준히 준비해왔고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133조원을 투입해 비메모리 1등을 선언한 것은 기술 흐름상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일본이 비메모리 분야 기술 패권까지 놓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 속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해결 방법도 우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 핵심으로 한국과 일본의 ‘공생’관계를 내세웠다.
양 원장은 “메모리 반도체 패권을 빼앗긴 일본은 이후 소재 산업 특화에 집중했고 한국은 반도체 기술에서 일본은 소재기술에서 서로 협력적 경쟁관계, 공생관계를 만들어 가족 같은 관계가 됐다”며 “서로의 기술에 대해 존중하고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로 한쪽이 없어지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서 일본 엔지니어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는 열쇠를 그는 ‘연대’에서 찾았다. 양 원장은 삼성전자 일본 디자인하우스 책임을 맡았을 당시 함께 근무했던 일본 엔지니어들과 아직도 교류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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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원장은 “일본 아베 정권이 보지 못하는 세계적인 기술 역사를 간파하고 그들의 전략을 미리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주도면밀한 논리가 필요하다”며 “‘복수’를 부르는 ‘비판’보다는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논리’로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세계 기술 역사의 중심은 여전히 미국”이라며 “무엇보다 5세대(5G)와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에서도 미국이 ‘한국은 전략적 협력관계’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미국의 손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전달해줘야 한다는 것이 양 원장의 확고한 생각이다.
양 원장은 장기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로 ‘교육’을 꼽았다. 양 원장이 지난해 8월 국가인재개발원장에 취임한 후 1년 남짓 동안 그의 반도체 특강을 거친 인원만 2만명이 넘는다. 그는 “그간 국민들이 전기처럼 중요하지만 정작 반도체의 소중함을 몰랐다”며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에게 반도체를 비롯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녀들에게 이공계 지원을 지도해야 한다고 해도 의과대와 공무원으로 몰리는 사회의 틀을 극복하기 어려웠다”며 “오히려 이번 일본 수출규제로 기초과학 인재의 중요성을 국가도 인식하고 예산 지원과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양 원장은 근로시간 단축도 같은 선상에 놓고 설명하면서 “반도체 분야는 일찌감치 근로시간 단축의 선순환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는 “단순 반복업무로 고통스럽게 일하는 분들은 주 52시간을 적용해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면서도 “반도체 연구개발직을 비롯해 창조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식 같은 반도체에 이상이 생기면 퇴근했어도 다시 출근하는 게 반도체인”이라며 “일괄적으로 법을 적용하기 전에 기존 100명이 하던 일을 10명이 할 수 있는 작업 시스템을 갖추고 나머지 인력 30%는 선행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다른 인력은 재충전과 교육의 시간을 허락하는 선순환 조직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업고에서 공부 잘하면 은행에 가는 게 상식이던 1985년 양 원장은 모두가 낯설어했던 삼성 반도체에 입사했다. 연구원 보조 신분에도 일본 도면을 읽고 싶다는 욕구로 일본어를 공부했다. 그 덕분에 88서울올림픽에 초청된 일본의 반도체 최고 전문가인 당시 NTT 전무 하마다 시게타가 부부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이후 31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양 원장은 하마다 부부를 부모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강화한 상황에서도 하마다 박사와 수시로 전화해 일본의 상황을 듣고 양국 협력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양국 반도체 최고 베테랑들의 연대에서 ‘공생관계’ 복원을 기대하기는 충분했다. /진천=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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