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광화문 천막 강제철거’ 후 몇 시간 만에 우리공화당(옛 대한애국당)이 광장에 다시 입성했던 지난달 25일, 미국 대사관 옆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시민을 경찰 10여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시민은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우리공화당의 천막을 카메라로 촬영하자 “왜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느냐”며 ‘애국하러 오신 분’ 몇 명이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도 태극기를 든 한 무리가 광장을 둘러싸며 행진했고 대사관 앞에는 정문을 들이받아 에어백이 터진 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우리공화당은 지난 주말 또다시 천막 세 동을 치며 광화문에 재입성했다.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공성전’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왜 하필 광화문일까.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광화문천막 2라운드’를 자진철거로 마무리한 지난 16일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쳐 박원순이 아니라 문재인이 우리 상대가 됐다”고 말했다. 한 서울시의회 의원은 “조 대표가 재미 참 많이 봤다”며 광화문에 천막을 안 쳤으면 우리공화당이 이렇게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시민의 불편이 곧 정치적 광고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광화문 훈장’을 지키기 위해 크고 작은 충돌은 이어지고 있다. 천막 설치를 막는 서울시 공무원과 애국당원이 뒤엉키기도 했고 “왜 천막을 치우지 않느냐”는 말싸움이 커터칼을 동원한 위협으로 번지기도 했다. 우리공화당 관계자 한 명은 지난 20일 천막 설치를 저지하는 서울시 공무원의 뺨을 때린 혐의로 연행됐다. 우리공화당만 광화문을 노리는 게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의 행방을 묻는 천막과 민주노총, 민중민주당의 피켓과 천막이 우후죽순 널려 있다. 매주 열리는 태극기집회와 ‘이벤트’처럼 몇만명이 몰리는 민주노총의 시위까지 광화문은 ‘갈등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광장이 4배로 넓어지면 어디서는 시위를 하겠지만 어디서는 책도 읽고 쉬지 않겠나”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맞춰 ‘자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광화문 시위의 강도는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시민의 주체적 발전으로도 가능하지만 법치주의가 촉진하기도 한다. 정치적 훈장이 된 광화문을 진짜 광장으로 돌려놓으려면 시민의 여가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집회·시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분명한 기준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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