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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대통령 인사 견제 장치 마련" VS "도덕성-정책검증 분리해야"

< 인사청문회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文정부 보고서 채택 없이 16명 임명...MB정부 때보다 많아

허위진술·검증자료 안내면 처벌...'현역의원 불패' 깰 필요

"국회 적격 여부 투표 실시후 '건의' 형식 靑 전달" 절충론도

美선 백악관·FBI 중심 사전 검증 후 정책 중심 상원 청문회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난 8일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설전을 지켜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문보고서 미채택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자를 차기 검찰총장으로 임명하자 인사청문회 개혁론이 확산되고 있다. /연합뉴스


# “장관 인사 검증을 제안하면 대개 ‘나는 장관 말고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닌) 차관을 하겠다’고 합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4월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답변한 내용이다. 이달 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주문한 ‘대탕평 인사’에 대해 이낙연 총리는 “그런데 뜻밖에도 사양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청문회에 임하기 싫다는 분들이…”라고 대답했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신상털기로 전락한 인사청문회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이 장관 자리를 꺼리는 사회가 됐다”며 인사 실패를 청문회 탓으로 돌렸다. 그는 “장관 인사 검증을 제의했을 때 곧바로 거절하기도 하지만 200개 문항에 이르는 청와대의 사전 질문지를 받아본 뒤에 부담을 느끼고 고사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일부 부처 장관 후보를 인선하는 과정에서 사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무려 20~30명에게 검증 제의 전화를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 8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거짓말’ 논란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윤 후보자는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친형인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변호사 선임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청문회 막판에 한 언론이 이를 뒤집는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위증’ 논란이 일었다. 윤 후보자는 2012년 12월 한 언론사 기자와의 통화에서 “변호사가 필요하겠다 싶어 이남석(변호사)이 보고 윤우진 서장 한번 만나보라”고 말했다. 청문회 답변 또는 기자와의 통화 중 하나는 거짓말인 셈이다. 위증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고 국회 인사청문보고서도 야당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윤 후보자를 범죄수사지휘 사령탑인 검찰 수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재가하자 야당은 강력 반발했다.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7월 말 ~8월 개각’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이참에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홈페이지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이달 22일 현재까지 계류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49건에 이른다.



◇인사청문회 역사와 문제점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본래 대통령중심제인 미국의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1787년 헌법 제정 당시부터 상원 의회가 주요 공직 인사청문회 제도를 230여년 동안 운영해오고 있다.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은 1,200여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실제로 인준청문회를 실시하는 대상은 절반가량이다. 인준 필수직은 상원의 임명동의가 없으면 임명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백악관과 연방수사국(FBI) 중심으로 도덕성과 법률 위반 의혹 등에 대해 꼼꼼히 사전 검증을 하고 상원 청문회는 업무능력 검증 위주로 진행된다. 브라질 등 남미 일부의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법관, 고위 외교관 등을 상대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지만 장관 청문회는 없다. 필리핀도 미국식 인사청문회 제도 일부를 도입했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대부분 인사청문회 제도가 없다. 다만 영국이 2008년 60개 직위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도입했지만 청문회가 임명을 제한하는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다.

한국에서는 2000년 6월 인사청문회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인사청문회법 제정 당시에는 헌법상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관,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관·중앙선거관리위원만 대상이었다. 그 뒤 2003년 1월 국정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이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됐고 2005년 7월에는 국무위원(장관)도 청문회 대상에 추가됐다. 인사청문회 경험이 쌓이면서 청문회의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9년 발간된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는 인사청문회 제도의 문제점으로 △후보자의 허위 진술 △도덕성 검증에 편중된 청문회 △지나치게 짧은 인사청문 기간 △자료 미제출과 증인 불출석 △당파적 질의 등을 거론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년2개월여 사이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 이미선 헌법재판관 등 16명의 고위공직자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되자 청문회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고위공직자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7명,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10명이었다. 기간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의 청문보고서 무시 비율이 훨씬 높은 셈이다. 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장인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4월 토론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시행된 김대중 정부 이후 문재인 정부의 인사청문회 후보자 낙마율이 17.5%로 가장 높다”고 밝혔다. 조 교수에 따르면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공직 후보자 중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낙마한 비율은 김대중 정부 12.5%, 노무현 정부 3.7%, 이명박 정부 8.8%, 박근혜 정부 9.2%였다.

◇인사청문회 수술 방안

일각에서는 인사청문회 폐지론까지 나온다. 하지만 인사청문회가 공직사회 문화를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수술해서 잘 활용하자는 견해가 우세하다. 인사청문회 개혁방안으로는 우선 △대통령의 인사 강행에 대한 국회의 견제장치 신설 △도덕성 사전 검증과 업무능력 검증 위주의 청문회 실시로 이원화 △허위 진술에 대한 처벌조항 신설 등 세 가지가 거론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4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국회에서 부적격이라고 판단하는 후보를 임명하지 않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면서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국회의 견제 필요성을 거론했다. 문 의장은 “미국처럼 사전에 국세청·검찰청·경찰청 등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검증하고 국회에서는 정책 검증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수철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국회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이 공직 후보자의 적격 여부에 대해 평가하는 무기명 비밀투표를 의무적으로 실시해 부적격 의견이 절반을 넘으면 임명하지 못하도록 관례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스스로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인사를 임명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헌법상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공직 임명에 대해서도 국회가 제동을 걸면 삼권분립이 훼손될 뿐 아니라 여소야대 체제에서는 야당의 잦은 반대로 국정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같이 견해가 엇갈리자 적격 여부를 묻는 청문특위 위원 투표를 실시하되 투표 결과가 구속력을 갖지 않고 ‘건의’ 의견으로 청와대에 전달되도록 하자는 절충론도 나온다.

도덕성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과 업무능력 검증 위주의 인사청문회로 이원화하자는 개혁방안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미국처럼 도덕성 사전 검증은 별도 기구에서 철저히 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는 정책과 자질 평가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도덕성 검증을 청와대 민정수석실 중심으로 진행하느냐, 아니면 의회에 따로 검증 기구를 두느냐는 좀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부 의원들은 도덕성 검증을 위한 인사청문소위원회 도입을 주장한다. 그러나 권 교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사전 검증 기능을 강화하고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박 전 수석전문위원은 “문재인 정부는 병역 면탈과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범죄 등 7대 인사배제 원칙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바뀌지 않는 일관된 검증 기준을 구체화해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가 허위 진술을 할 경우 징역형 혹은 벌금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이 10일 제출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에는 후보자가 거짓 진술을 할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앞서 조정식 민주당 의원과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도 각각 후보자가 거짓 진술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관계자는 “증인이나 참고인은 위증하면 처벌을 받는데 후보자에 대해서는 관련 조항이 없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검증 자료 미제출 시 처벌 △인사청문 기간 확대 △국회의원 겸직 장관 후보자에 대한 솜방망이식 검증 지양 등이 개혁 방안으로 거론된다. 송옥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후보자가 검증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경고 또는 징계 조치 요구를 할 수 있다. 현재 20일로 돼 있는 인사청문 기간을 30일로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제출돼 있다. 행정학박사인 김병민 정치평론가는 “의원들이 동료 의원에 대해 봐주기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한 장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회의원 겸직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질의해 현역 의원 불패 신화를 깨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야는 모두 인사청문회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정권교체로 처지가 바뀔 때마다 다른 주장을 펴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야 3당은 6월 국회 정상화 협상에서 인사청문회 제도개선소위를 열어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먼지만 쌓여가던 인사청문회 개혁법안들이 언제 어떻게 처리될지 주목된다.
/김광덕 논설위원 k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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