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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신장위구르





17세기 초 남·북 몽골을 복속시킨 청나라는 서몽골마저 합병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1752년 서몽골의 영웅 아무르사나가 왕위계승에서 밀려 청나라에 귀순했다. 이때다 싶은 건륭제는 아무르사나를 앞세워 서몽골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아무르사나가 약속을 깨고 다시 세력을 키우자 건륭제가 공격해 완전히 토벌해 버렸다. 정벌 후 건륭제는 직접 통치하면서 1759년 새로 얻은 땅이라는 뜻에서 신장(新疆)이라고 선포했다. 동쪽 간쑤성에 있던 한족·회족, 서쪽 타림분지에 거주하던 위구르족을 대거 이주시킨 것도 이때다.

하지만 청나라 멸망 후 중화민국이 들어왔지만 군벌들이 들끓는 혼란기라 신장까지 통치력이 미치지 못했다. 그 틈을 노려 위구르인들이 독립을 선언했으나 이내 진압돼 국민당 직할 통치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도 얼마 못 갔다.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 집중하는 사이 이번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을 등에 업고 독립을 선포한 것이다. 이들은 국공내전에서 공산 진영이 승리하자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연합을 선언했다. 공식적으로 중국령이 된 것이다.



6년 후인 1955년 중국은 이 지역을 ’신장위구르자치구’로 지정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 편입된 신장위구르는 성(省)급 행정구역 중 가장 면적이 크다. 중국 총면적의 6분의 1에 달할 정도다. 무엇보다 이곳은 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를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던 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이미 10세기께 이슬람교가 전해졌는데 중국 땅이 되는 과정에 갈등이 컸던 탓에 반중 정서가 뿌리 깊은 편이다. 특히 독립을 주장하는 이슬람 급진세력은 1997년 2월 봉기를 일으키는 등 중국 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 정부가 위구르 이슬람신자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 등의 비판이 거세지자 백서까지 내놓으며 대응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신장위구르가 오랫동안 중국의 일부였다는 게 내용이라고 한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직접 “신장위구르 이슬람교 탄압은 세기의 오점”이라고 맹비난하자 중국은 애가 타는 모양이다. 신장위구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국제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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