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이어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강행하려 하자 국제사회에서 “삼성과 하이닉스는 화웨이가 아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신중한 태도를 취하던 미국에서도 일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25일 미국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국기업연구소(AEI)는 최근 ‘일본, 한국에서 물러서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연구원 칼럼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자문위원을 지낸 클로드 바필드 연구원은 이 글에서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 어느 편을 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위험하고 파괴적인 보복’을 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수출 규제가 전세계 전자업계의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특히 5G 이동통신 산업의 핵심인 삼성전자를 곤란에 빠뜨려 중국의 지배력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이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논의 등을 언급한 뒤 “어떤 결정이 나오든 필수적인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설득해서 수출 규제를 철회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반도체산업협회(SIA),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등 미국의 6개 전자업계 단체는 한일 양국의 통상당국에 보낸 서한을 통해 조속한 해결 노력을 촉구하면서 일본 수출 규제를 ‘불투명하고 일방적(Non-transparent and unilateral) 정책 변경’이라고 규정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IHS마킷도 최근 보고서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는 가뜩이나 미중 무역전쟁과 글로벌 IT시장 수요 부진 등에 시달리는 아시아 수출기업들에 또다른 악재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라지브 비스워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는 ‘연쇄 파급효과(contagion effect)’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한국에서 수입하는 부품에 의존하는 미국과 중국도 고통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언론들도 일제히 일본을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양대 동맹인 두 나라가 중국이나 북한을 상대로 한 게 아니라 서로 대치하고 있다”면서 “상황이 악화하면 양국의 경제 관계를 훼손할 뿐 아니라 5G 시대를 맞은 전세계 스마트폰 산업 등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산하 싱크탱크인 EIU를 통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일 양국의 경제가 긴밀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일본의 조치는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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