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불매 운동이 거세지면서 영화계도 한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개봉과 동시에 독립예술영화 좌석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많은 고정팬을 확보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박스 오피스에서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2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주전장(主戰場)’은 위안부 이슈에 대한 일본 극우 인사의 역사 인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관객들의 쏟아지는 지지에 힘입어 현재 독립예술영화 좌석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을 기록하고 있다.
개봉 전인 19일까지만 해도 이 영화의 수입·배급사가 극장 사업자들로부터 통보받은 상영관 숫자는 25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주말을 기점으로 온라인에서 ‘상영관 수가 너무 적다’ ‘동네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게 상영관을 늘려달라’와 같은 관객들의 요구가 빗발치면서 상영관을 59개나 확보한 다음 개봉했다. ‘주전장’의 수입·배급사인 시네마달 관계자는 “비슷한 규모의 기존 해외 다큐멘터리와 비교하면 훨씬 많이 상영관을 확보한 것”이라며 “아무래도 점점 악화하는 한일관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양국의 민감한 현안을 다룬 영화의 흥행 추이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장 다음달 7일에는 항일 투쟁을 다룬 대작인 ‘봉오동 전투’가 개봉한다. 총 제작비가 190억원에 달하는 이 영화는 1920년 6월 중국 지린성에서 한국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을 무찌른 전투를 그린다. 유해진·류준열·조우진 등이 출연하며 ‘살인자의 기억법’ ‘용의자’의 원신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출신 지역도, 계층도, 성별도 다르지만 ‘조국 독립’이라는 대의 아래 뭉친 이들의 드라마가 한껏 달아오른 반일 감정을 자극할 경우 예상 외의 초대형 흥행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8월8일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올해 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의 사죄를 위해 투쟁한 27년을 담은 영화 ‘김복동’이 개봉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은 배우 한지민이 맡았다. 제작진이 상영 수익 전액을 위안부 관련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벌써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 16일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해 이틀 만에 목표금액 1,000만원을 모두 모으기도 했다.
반면 같은 날 8일 공개되는 일본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를 배급하는 싸이더스는 점점 나빠지는 한일관계가 관객 동원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다음 달 14일 개봉하는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처럼 순수 한국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본 영화’ 딱지가 붙으면서 상영관 잡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있다. 또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일본 애니메이션인 ‘명탐정 코난: 감청의 권’은 지난 24일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6위에 머무르며 기대만큼을 관객을 동원하지 못하고 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