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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아베, 자유무역의 환상을 깨다

김현수 산업부장

日, 철저한 준비·타이밍 맞춰 한방

글로벌분업체계 서열화 의도한 것

반일프레임에 갇혀 갈등할때 아냐

日과 경쟁우위 기반조성 힘합쳐야





정치인들에게 프레임은 양날의 칼과 같다. 자신에게는 유리하고 상대에게는 불리한 프레임을 만들면 승리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유리할 것으로 예상했던 프레임이 오히려 자신에게 향하기도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정치권은 온통 상대를 ‘친일 프레임’에 가두기 위해 난리법석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난타전은 물론이고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보란 듯 일본의 우익 로비단체를 다룬 책을 들고 나타났다. 시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자신들의 프레임에 가두려 한다. ‘퇴행적이고 저급한 반일감정’이라는 극단적인 발언부터 일본의 주권 침해에 대한 대응이라는 말까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불매운동은 해석이 달라진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합리와 합법의 범위 안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개인적 판단과 일본에 대한 자발적 반대 표시를 일부러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을 가지고 치고받는 동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 우익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일본의 이번 수출규제는 정치적 결정이기도 하지만 근 반세기를 지탱해오던 한일 간 자유무역을 깨뜨렸다. 결정을 앞두고 아베 정부의 계산은 실보다 득이 많았다. 한일관계를 정치와 경제로 분리해왔던 우리의 생각은 순진했다. 아베 총리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경제를 휘청이게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도 더 교묘한 한 수를 뒀다. ‘자유무역의 시한부 환상’이 깨졌다는 강철구 전 이화여대 교수의 말처럼 철저하게 준비하고 타이밍을 맞춘 한 방이었다.



자유무역의 환상이 깨지고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음은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이나 미중 무역분쟁이 이미 예고했다. 앞서 일본 오사카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도 자유무역질서라는 부분은 미국의 반대로 마지막에 선언문에서 빠졌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사실상의 보호무역주의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우리만 실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반도체 소재를 선택한 것은 한국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타격을 넘어 글로벌 분업체계에서 서열을 두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반도체는 정보기술(IT)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에도 필수적인 제품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반도체 생산의 글로벌 분업체계는 경제적인 합리성을 바탕으로 움직였다. 한국이 D램의 70% 이상을 점유해도 미국과 일본·중국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지금까지 한국의 과점을 문제 삼지 않았던 이유를 명확히 알려줬다. 글로벌 공급체인에서 일본은 전 세계를 위협할 정도로 상위에 있는 만큼 언제든 공급체인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일, 반일 프레임에 얹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전달할 때가 아니다. 불매운동도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일 뿐 이를 두고 이래라저래라 할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에 글로벌 분업체계에서 우리가 어떤 지위를 차지할 것이냐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아베 정부에 ‘한국은 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구축해 가는 중요한 이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도 ‘일본이 적인가’라는 질문에 답해보자. 일본은 적이 아니다. 갈등상황이 지속 되고 자유무역이 깨진다 해도 일본은 우리의 이웃국가이고 경제 교류국가이다. 다만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 뛰어드는 기업을 최소한 상처투성이로 내보내지는 말자. 글로벌 분업체계에서 우리의 지위를 확고하게 다지지 못한다면 일본의 수출규제는 조만간 중국의 수출입규제로 바뀌어 또다시 우리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중국 언론은 한일 갈등을 놓고 루쉰 소설의 인물 샹린댁(祥林嫂)의 예를 들며 상처나 억울함만 호소하기보다는 어떻게 국가와 민족을 진정한 강자로 만들지를 고민하라 제언한다. 기분 나쁜 말일 수도 있지만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hs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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