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1년인 1401년 4월 29일, 사관(史官) 민인생이 편전에 들자 태종은 민인생에게 이 곳은 왕이 쉬는 곳이니 물러날 것을 명했다. 하지만, 민인생은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라는 뜻의 “신여불직(臣如不直) 상유황천(上有皇天)“이라는 말을 남기며 물러서지 않았고 이는 지금까지도 사관의 굳센 기개를 뜻하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유일하게 두려워 한 인물 ‘사관(史官)’, 바로 이 사관을 최초로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안방극장에 등장하자 마자 화제성 1위를 차지 하더니 곧바로 수목극 왕좌 자리를 꿰찬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신입사관 구해령’(극본 김호수 / 연출 강일수, 한현희 / 제작 초록뱀미디어)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입사관 구해령’은 ‘조선시대에 여자사관 제도가 정착되었다면?’ 이라는 가정 아래 조선의 첫 문제적 여사(女史) 구해령(신세경)과 반전 모태솔로 왕자 이림(차은우)의 ‘필’ 충만 로맨스 실록을 담은 드라마다. 19세기를 배경으로 별종 취급을 받던 여사들이 남녀가 유별하고 신분에는 귀천이 있다는 해묵은 진리와 맞서며 ‘변화’라는 소중한 씨앗을 심는 팩션 사극.
명실공히 사극여신 신세경과 차세대 주연배우 차은우, 다양한 작품을 통해 존재감을 빛내온 박기웅의 조합으로 회차마다 시청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신입사관 구해령’. 오늘(30일) 밤 8시 55분 1부에서 8부를 몰아서 볼 수 있는 ’신입사관 구해령 한번에 몰아보기‘ 특별방송 편성을 앞두고 드라마의 독특한 매력 포인트를 짚어봤다.
#POINT 1. 왕이 두려워한 유일한 인물! 사관(史官) 주인공 최초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은 지금까지 사극의 주변 인물이었던 ‘사관’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최초의 드라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극 드라마에서 사관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거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신입사관 구해령’은 그런 사관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세운 데다 ‘여자사관이 있었다면?’ 이라는 발칙한 상상이 더해져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사관은 역사의 초고를 작성하는 일을 담당한 관원으로 정확하게는 예문관(藝文館) 소속의 봉교, 대교, 검열을 말한다. 이들은 왕이 신하를 만나는 모든 곳과 행사에 참여하며, 대신들 간의 정사 논의, 각종 보고서 등을 사초(史草)에 남겼다. 이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모두 사초에 작성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속기사’를 그리고 기록들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는 점에서 ‘기록 관리 전문가’를 사론을 통해 당대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평가한다는 것에서 ‘역사학자’의 면모를 두루 갖춘 당대의 초 엘리트 관리다.
이처럼 사관의 궁극적인 임무는 역사를 편찬하는 일이었지만 그에 앞서 보고 들은 그대로 사초를 작성함으로써 왕권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 역시 그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그래서 태종과 민인생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절대 권력자였던 왕이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사관은 역사를 기록한다는 업의 중요성과 자부심이 높아 고위 관직자들도 시기하는 특별한 의미의 관리로 왕비의 간택 과정만큼이나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선발했다고 한다. 당연히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자리였다. 그런데, ‘신입사관 구해령’은 바로 이 자리에 여자사관을 등장시킨다. 말 그대로 발칙한 상상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실제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조선왕조 실록에 의하면, 중종 14년(1519년) 4월 22일 경연 시 동지사 김안국이 중국에 여사(女史)가 있어 황제와 후궁의 동향을 기록한 바가 있다는 사례를 들어 중종에게 여사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즉, 왕의 사생활까지 기록에 남기자는 의미였다. 이에 중종은 여인들은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여사 제도를 거절했다고 한다. ‘신입사관 구해령’이 팩션 사극을 표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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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강일수 감독은 제작발표회 시 드라마 제작 배경을 “(당시) 여사 제도가 조선에서 시행이 됐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19세기는 조선이 100년의 암흑기로 들어가는 시기였기에 이 때 조선에 변화가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바깥 세계에 눈을 뜨고 서양의 기술문명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자기의 삶을 살았다면 조선이 좀 더 나은 역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 변화의 시작이 여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POINT 2. 구해령! 조선시대에 나타난 ‘무엄한’ 여인에 매혹되다
“무엄해야지요. 왕도 세자도 대신들도 겁내지 않는, 고집은 황소 같고, 배짱은 장수 같은 이상한 여인”
신세경이 분한 주인공 구해령을 단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조선은 남녀가 유별하고 신분의 구분이 삼엄한 유교의 나라였다. 당시 과거는 남자, 특히 양반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에게만 열려있는 특별한 기회였고, 여인은 신분과 상관없이 일정 나이가 되면 혼례를 치루고 남편 봉양과 자식 양육에 평생을 바쳤다. 그간 안방극장에 선보인 사극의 여성 캐릭터들은 이 같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드라마 속 구해령은 사뭇 다르다. 양반집 규수이지만 취미는 서양 오랑캐 서책 읽기에 존경하는 인물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어린 시절을 청나라에서 보내 세상에 호기심 많은 자유로운 영혼인데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도와주는 오지라퍼다.
여기에 집안에서 마련한 혼인 자리를 걷어차고 과거를 치루고 관직에 나설 만큼 주체적이다. 왕세자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과감 없이 말할 정도로 당차고, 어찌 보면 현대물의 캐릭터를 똑 떼어내서 조선으로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면이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운명을 거부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그래서 조선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는 구해령의 모습은 지금을 사는 시청자들에게도 통쾌함을 주며 공감을 사고 있다. 19세기의 구해령이 일면 21세기의 지금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구해령을 맡은 배우 신세경 역시 “구해령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이전에 맡았던 사극 속 배역이나 역사시간에 배웠던 고정관념으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했다”며 “보편적인 가치에 부응하며 사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삶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구해령의 모습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고 했다.
‘사관’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조선시대 신여성’이라는 차별화된 캐릭터로 안방극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신입사관 구해령’, 회차를 거듭할 수록 탄탄한 서사와 인물간의 쫄깃한 관계가 선명해지면서 보는 재미까지 더해지고 있어 앞으로도 시청률 상승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예문관 권지의 신분으로 본격적인 사관 생활을 시작한 구해령이 이림(차은우 분)과 궁 안에서 재회하며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을 알렸다. 지난 방송 말미 이림이 내시가 아닌 왕자의 신분임을 알게 되며 두 사람 관계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신입사관 구해령’은 매주 수, 목 밤 8시 55분에 방송된다.
/김주원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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