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의 개방화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주로 쓰이는 개방화 지수는 수출입 액수를 합한 총무역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것이다. 작년 기준 한국의 개방화 지수는 83%로 미국의 27%, 일본의 35%, 중국의 38%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무역구조도 국내에서 제품의 전 생산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글로벌 공급체인망에 따른 국제적 분업이 대세다. 이는 첨단산업일수록 더하다. 금융시장도 개인이나 기업의 투자자본 유출입이 가장 자유로운 국가 중 하나다.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투자비중은 전체 투자액의 3분의1이 넘는다. 거시지표 외의 다른 부분에서도 한국의 개방화 정도는 최상위급이다. 연간 해외 출국자수는 3,000만명에 육박하고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나라 숫자로 본 한국의 여권 파워는 세계 2위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한국이 세계 12위의 경제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개방된 국가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개방 국가는 계속 모든 부문에서 글로벌화를 추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외교나 국방은 물론이고 경제 부문에서도 정책이 미치는 국제적 영향과 그것이 다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이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외교·국방에서의 각종 해프닝을 보면 정책 입안자들의 글로벌마인드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소득주도 성장이 실제 일어나려면 늘어난 소득이 국내 소비와 투자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개방경제에서는 설사 소득이 늘어나도 해외 직구나 여러 채널을 통해 국외로 빠져나간다. 설사 국내 소비가 증가해도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하면 국내 투자는 증가하지 않는다. 이젠 기업투자도 국적을 불문하고 더 유리한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과거 폐쇄경제를 가정하고 만들어진 소득성장이론은 개방경제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조세정책도 글로벌시대에 역행한다. 많은 나라가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을 낮추고 있다. 이미 서구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이 세금이 낮은 국가로 본사를 이전하고 이민을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글로벌시대에 한국만 예외적으로 법인세와 소득세를 올렸다. 이미 엑소더스가 시작됐음이 여러 데이터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지난 4년간 2배 가까이 증가했고 지난 정부에서 꾸준히 감소했던 해외 이민자 수도 이번 정부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높은 법인세와 상속세·반 기업적 환경이 멀쩡한 기업과 개인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지금 한국은 일본과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일제 강제징용 근로자 배상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주는 글로벌 영향을 간과한 탓이기도 하고 일본의 의중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글로벌마인드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도 일본의 조치가 몰고 올 글로벌 파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연일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고 양국 모두 먼저 물러서거나 서로 타협하지 않고 장기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개방 국가를 포기하고 글로벌화를 후퇴시키는 쪽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이점이 해결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양국 모두 글로벌화에 역행하는 쪽으로 나가는 것은 공멸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 민간의 글로벌 DNA는 정부보다 더 충만하다. 이젠 대한민국 상당수 젊은이들이 어려서부터 다양한 기회로 해외 문화를 체험하고 국제화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시대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정부의 대응은 지지율 상승을 위한 반일감정 조장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1980년대 운동권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쇄국정신으로 무장한 채 망국을 경험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망령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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