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일상사를 잊게 만드는 것. 슬픔도 괴로움도 분노도, 그 일에만 집중하면 모두 잊을 수 있게 만드는 것.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사로잡힘의 대상을 블리스(Bliss·희열)라 불렀다. 블리스는 황홀경에 가까운 기쁨,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하는 행복한 상상에 빠지게 만드는 기쁨이다. 돌아보니 우리 삶에는 이런 크고 작은 블리스의 순간들이 있었고, 그 ‘블리스의 별자리’를 그려내는 힘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나는 피아노에 미쳐 블리스를 느끼기도 했고, 밤낮으로 책읽기에 사로잡혀 블리스를 느끼기도 했으며, 지금은 글쓰기에 미쳐 매일 밤잠을 설치며 살아간다. 내면의 기쁨을 가득 끌어안은 블리스의 저력은 힘들고 외로울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싶을 때는, 내 안의 작은 블리스를 추구함으로써, 즉 맹렬히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일기를 쓰면서 ‘외부의 행운’이 없어도 ‘내 안의 희열’을 가꾸어나가는 법을 배웠다.
크고 작은 블리스들은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더 아름다운 마음의 별자리를 만든다. 여행에 대한 열정, 글쓰기에 대한 사랑, 심리학 공부를 향한 목마름, 강연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 아픔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대한 애정이 지금의 내 삶을 구성하는 ‘블리스의 별자리들’이다. 자기 안의 블리스가 폭발하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인생 전체를 바꾸기도 한다. 고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그림의 황홀경에 사로잡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고갱은 안정된 일자리와 행복한 가정을 박차고 나와, 가난한 무명 화가로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블리스는 외부의 조건이 만들어주는 수동적인 기쁨이 아니라 삶 전체를 던져야만 만날 수 있는, 반드시 존재의 자발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 기쁨이다. 블리스는 인생을 바꾸는 황금열쇠인 만큼 그것을 얻기 위한 고통과 대가도 크다. 하지만 고갱처럼 극단적인 선택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블리스를 찾아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수 없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조금씩 자기 안의 결핍, 자기 안의 그림자, 자기 안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마음챙김 훈련을 일상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기 안의 양극단을 조율하고, 원하는 것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을까.
융 심리학에서는 자기 안의 양극단을 인지하고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대극의 통합’이라 부른다. 우리가 정반대에 가까운 성격의 이성에게 자신도 모르게 호감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런 ‘대극의 통합’이라는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타히티로 떠나버리는 고갱처럼 급격하게 인생의 궤도를 바꾸기 전에, 평소에 ‘내 안의 양극단’을 인지하고 훈련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안의 블리스’를 실현할 수 있다.
첫째,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니까 이런 건 맞지 않아’라는 식의 과도한 자기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향성과 외향성, 남성성과 여성성, 이성과 감성 등의 양극단이 한 사람의 인격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둘째, 자신의 삶에서 부족한 측면들, 특히 한쪽으로 편향된 취향이나 성격과 정반대되는 것들을 향해서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외향적인 사람들은 내성적인 사람들의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헤아려봄으로써,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고 서로의 장점을 배울 수 있다. 셋째,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한 모든 행동을 결코 ‘이 다음에 여유 생기면 해결하자’는 식으로 미뤄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미루면 죽을 때까지 내 안의 눈부신 블리스를 찾을 수가 없다. 블리스는 꼭 직업이 아니어도 좋다. 내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모든 활동들, 예컨대 꽃을 가꾸는 일, 악기연주, 반려견과 우정 쌓기, 차를 마시며 차분한 담소를 나눈 일 등 아주 작은 일상의 기쁨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궁극적으로 평화와 안식으로 이끌어주는 소중한 블리스다. 삶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그 어떤 블리스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매일 우리 마음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블리스를 찾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수놓을 권리가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