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앞두고 청와대가 지난달 두 차례 고위 인사를 대일(對日)특사로 파견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해온 것으로 2일 밝혀졌다. 청와대는 외교적 해법을 찾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에도 불구, 일본이 끝내 경제 보복을 강행한 것을 성토하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은 이날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해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해 청와대가 안보 협력 파기라는 ‘맞불’을 거론하면서 한일 관계가 끝 모를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 차장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많은 분들이 왜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특사 파견을 하지 않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며 “이미 우리 정부 고위 인사의 파견은 7월 중 두 차례 있었다. 우리 측 요청에 따라 고위 인사가 일본을 방문하여 일측 고위 인사를 만났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일특사 파견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던 청와대가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한 것은 한국이 일본에 다양한 형태의 외교적 대화를 제안했음에도 일본이 이에 응하지 않고 추가 경제보복을 강행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김 차장은 일본 정부가 갈등 중재를 위한 미국 측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현상동결합의(standstill agreement)’를 한일 양국에 제안했지만 일본이 이를 즉각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미국 측이 지난달 29일 한일간 갈등이 지속되는 데 우려를 표하며 양측이 외교적인 합의를 도출해서 협상을 했으면 좋겠다고 우리에게 제안을 했다. 미국 측은 같은 날 일본에도 동일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 측의 한일 양측에 대한 제안을 기초로 우리는 30일 일측에 재차 양국간 수출통제제도에 대한 설명과 정보공유를 위한 양국간 고위급 협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몇 시간 후에 (일본이) 우리 제안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한일 양측이 외교적 해법을 끝내 찾지 못하면서 양국 모두 경제는 물론 안보, 국제사회의 신뢰 손상까지 입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일본 측 예고대로라면 이날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은 오는 7일 공포되고 28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그 전에 출구전략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우지 않으면 양국관계는 정말 어려운 길로 들어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화의 여지를 만들어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9월 하순 유엔총회, 10월 말∼11월 초 아세안+3 정상회의, 11월 중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을 통해 만나고 10월22일 일왕 즉위식 특사 파견 등을 통해 날 선 양국민의 감정 완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이날 일본의 결정과 우리 정부의 반격을 지켜본 후 “아무래도 한일관계 악화가 장기전으로 흘러갈 것 같다”며 “하지만 이게 완전히 수출을 금지하는 금수조치는 아니기 때문에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또 이 교수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른 나름의 해법을 제시해달라는 일본 측의 신호로 느껴진다”며 “그 부분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을 우리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본이 한국과의 신뢰 훼손 문제를 제기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양국이 진지하게 타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으로 강제징용 문제는 일단락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판결은 한국의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 관련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을 실제로 진행할 경우 양국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양국이 진정성 있게 얘기를 해봐야 한다”며 “정치적 행보나 겉치레만 생각 말고, 국민과 기업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지윤·박우인 기자 방콕=정영현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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