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생님이 사고를 친 학생에게 재발방지책을 만들어 내라는 격입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법무부가 검찰에 피의사실 공표 및 포토라인과 관련해 공청회와 개선방안 제출을 지시한 데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법무부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담긴 형법의 담당 부처이며 지난 2010년 제정한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도 법무부 훈령이다. 법률을 관장하는 부처가 실무를 담당하는 청에 연구를 맡긴 데 대한 비판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기능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지 않은 듯하다”는 혹독한 지적도 나왔다.
심지어 최근 검찰이 ‘약사법 위반’ 사건 보도자료를 배포한 경찰관에 대해 피의사실공표죄로 수사를 진행하면서 검경 간 갈등이 극에 치달았으나 법무부는 여전히 한발 빠져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검찰에 수사협의체를 열어 피의사실 공표 기준에 대해 논의하자고 했으나 대검은 ‘공보 기준은 법무부 소관’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법무부에 피의사실 공표 기준을 협의하자고 두 차례 공문을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 개선방안과 함께 경찰의 협의 요청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법무부의 자세에서는 주무부처로서의 책임감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최근 불거진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박 장관이 불을 지핀 측면이 있는데 말이다. 박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피의사실 공표죄가 유명무실하다는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적을 받고 “피의사실 공표 행위, 심야 수사, 포토라인, 이 세 가지를 없애는 방향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2010년 공보준칙 제정 이후 정부 차원에서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공식 방침을 밝힌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 관련 논란은 이를 계기로 확대 재생산됐다. 박 장관은 1월 신년맞이 기자간담회에서는 이 세 가지를 없애는 것이 교수 시절부터의 지론이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그간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법률적 공백을 방기해온 잘못도 있다. 지난해 11월 법제처는 형법상 공판 청구 전 피의사실 공표가 금지되고 있음에도 법무부·경찰청의 행정규칙에 근거해 공표가 이뤄지고 있다며 법무부에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조만간 이뤄질 개각에서 교체 1순위로 꼽힌다. 그전에 피의사실 공표 관련 논의를 정상궤도에 올리는 ‘결자해지’가 필요하다. 그 방법은 법무부가 출범시킨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이미 5월에 내놓았다. 법무부·행정안전부를 포함한 범정부 차원의 ‘수사공보제도개선위원회’ 구성이 바로 그것이다. buz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