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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나는 친일파인가

변재현 사회부





“대한민국을 분란시키는 친일파가 아닌지 심각하게 의심되네요”

‘일본 전범기업의 제품을 공공구매하지 않도록 서울시장에게 노력 의무를 지우는 조례가 국가 비차별을 규정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지에 실은 6일 아침. 이 조례를 발의한 홍성룡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송파3)이 기자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다.

‘나는 친일파인가’ 자문해봤다. 이 상황을 촉발한 일본의 우리나라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에는 논리가 부족하다고 기자도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유무역으로 이득을 본 일본이 무역 규제에 나서는 것도 이해 가지 않는다.

다만 정치는 냉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제조업 핵심 부품과 원료를 아직도 일본에 의존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연구개발(R&D) 지원에 나섰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에 맞서 중앙 정부가 대응하는 것은 ‘중앙 대 중앙’이라는 격에 맞는 행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중앙 정부와 조금은 달라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날 서울 중구는 도심에 ‘NO 재팬’ 깃발을 내걸었다 불과 몇시간 만에 취소했고 구로구는 광장에서 일본 규탄대회를 열었다. 서대문구에서는 구청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일본제 사무용품을 타임캡슐에 넣어 묻는 이벤트를 벌였다. 마치 지자체 간 ‘반일 경쟁’을 하는 듯하다. ‘일본 전범기업 공공구매 제한 조례’도 마찬가지다. 홍 의원이 발의한 조례안의 전범기업에는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히타치 등 일본의 주요 대기업이 대거 포함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기업들로부터의 공공구매 규모에 관한 자료조차도 없다고 한다.

언제까지 일본과 척을 질 수 없다는 사실을 국민도 정치인도 안다. 지자체가 지나친 경쟁에 나서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날 구로역 광장의 일본 규탄대회에서 만난 시민은 “일본과 관계가 개선되면 불매운동은 그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범기업 조례에 공동 서명한 의원조차도 “악화한 한일 관계에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다.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지자체의 반일 운동에 찬성하면 애국자이고 걱정하면 친일파인가. 전범기업 공공구매 조례에 찬성하면 애국자이고 비판하면 친일파인가. 의견을 내고 기사를 쓰는 것이 친일이라면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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