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은 1941~1945년 일본과 미국 등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일본이 시작했지만 우리 민족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수십만 명의 조선인이 군인·강제 노역자로 징용됐고, 젊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인간 이하의 수모를 겪었다. 또 한반도 분단과 전후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을 불러왔다.
신간 ‘일본 제국 패망사’는 일본 수뇌부가 전쟁 여부를 두고 갈등하던 때부터 진주만 습격과 미드웨이해전의 반격,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의 고뇌, 솔로몬 해전과 필리핀 전투, 원폭 투하까지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약 10년에 걸친 태평양전쟁을 상세하게 다뤘다. 책은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0여 년만인 1960년대 집필돼 1970년에 출간됐다. 저자는 최고 군 지도자, 내각 구성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생존자들, 전쟁 포로 등 500여 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이 때문에 1,399쪽에 달하는 분량에도 태평양전쟁의 참상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이 책으로 197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태평양전쟁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도의 크기였던 일본이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기로 싸운 그야말로 ‘자살행위’에 가까운 ‘기묘한 전쟁’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일본 지도부가 처음부터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연합함대 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 대장은 대미 개전을 앞두고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가 승산을 묻자 “처음 6개월이나 1년 정도 우세하겠지만 그 뒤는 장담할 수 없다”며 전쟁을 반대했다. 야마모토뿐만 아니라 일본 해군은 미국과의 싸움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무모한 전쟁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기회주의적 욕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서 찾는다. 동맹국 독일이 승승장구하는 기회를 틈타 재빨리 전쟁에 끼어든다면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이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는 것이다. 전쟁에 이길 자신이 없는데도 독일이 있는 이상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허황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일본이 그토록 믿었던 독일도 소련의 역량을 오판했다가 패망하고 말았다. 아돌프 히틀러 등 독일 수뇌부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영국조차 짧으면 한 달, 길어야 반년 안에 소련이 항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책을 마치며 내가 얻어낸 결론은 역사에서 단순한 교훈은 없으며,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역사 속 모든 전쟁은 인간의 기회주의와 무모한 욕망이 결합해 비극을 불러왔고 이는 태평양 전쟁에서도 반복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태평양전쟁을 뛰어 넘어 전쟁에 깃들어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일본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왔다. 300만 명이 넘는 일본군과 민간인이 사망했고 원자 폭탄을 맞고서야 백기를 들었다. 전쟁 막판에 일본은 전투기 비행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전 국민이 굶주리면서도 3만7,000 개 이상의 작은 증류 도구를 이용해 소나무를 파헤쳐 그 뿌리에서 기름을 짜 7만 배럴에 이르는 연료를 생산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인적·물적 수탈도 극에 달했다. 각 가정의 숟가락까지 빼앗아 군수 물품으로 조달했고, 10살이 채 되지 않은 소년 소녀들이 강제 노역에 끌려갔다.
저자는 일본 지도자들이 자존심, 나르시시즘,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 등이 뒤섞이는 바람에 어떤 참사를 만들어냈는지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전한다. 천황이라는 존재 역시 중요한 판단을 할 때 걸림돌로 작용했다. 천황의 뜻을 받들어 이성이 아닌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혀 질 게 뻔한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역사가 반복된다’는 저자의 말은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아베 신조의 군국주의 광풍을 타고 자성의 목소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게 역사 반복에 대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5만8,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