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 활동기한 종료를 2주 앞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제목을 빌리자면 60일 연장된 정개특위 역시 지정생존자와 같은 운명이 아닐까 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의 운명은 2주 안에 여·야간 극적인 합의안을 도출하거나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올린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을 의결하는 수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극적 합의안이든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제 개편안이든 어느 것이든 8월 말까지 의결하지 않을 경우 선거제 개편은 좌초되고 20대 총선은 현행 선거제도로 치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일각에서는 패스트트랙에 상정됐으니 정개특위 활동이 종료되더라도 본회의 의결까지 자동으로 가지 않느냐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만만치가 않습니다. 정개특위가 종료되면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로 이관됩니다. 여전히 자체 개정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행안위에 이관됐을 때라고 협상테이블에 적극적으로 앉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결국 상임위 패스트트랙 심사기간 180일을 다채우면 10월 말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 법안의 체계와 자구 심사기간 90일을 다시 채워야 합니다. 그 시점은 ‘1월 말’.
특히 한국당이 보이고 있는 ‘태업’의 배경은 선거제 개편과 연동되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상황에 있습니다. 사개특위도 8월에 활동이 종료됩니다. 다만 사개특위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사개특위 활동기한 종료 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이관돼 선거제 개편법안과는 달리 체계·자구 심사를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90일이 단축되는 겁니다. 결국 사개특위 법안은 10월 말 본회의에 상정됩니다. 10월과 내년 1월이라는 ‘시간 차 발생’. 여야 4당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법안의 본회의 표결을 선거법을 우선 처리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이어 공수처 설치안의 순서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일부 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6월 특위의 활동기한을 60일 연장하면서 쾌제를 불렀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정개특위든 사개특위든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이 한 곳씩 나누기로 하면서 어떻게든 시간 차 공격이 가능해졌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런 사이 민주평화당이 분당이 됐습니다. 바른미래당은 선거제 개편과 관련한 두 목소리가 강하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시간은 한국당 편입니다.
■60일 연장된 수명..두달동안 무엇을 했나
한국당의 자체 개편안이 나와 여야5당이 극적인 합의를 이룬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재로서는 정개특위에서 기존 패스트트랙 법안대로 의결을 거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정개특위는 민주당 의원 8명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포함한 9명이 찬성표를 던질 것이 확실시 됩니다. 여기에 바른미래당의 김성식 의원과 평화당에서 나온 대안정치 이용주 의원까지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무난히 의결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눈치 챘을까요. 한국당은 다시 장외집회를 준비합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오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는 장외투쟁에 나서겠다고 18일 밝혔습니다. 황 대표는 이날 “가열찬 투쟁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문재인 정권의 국정 농단과 대한민국 파괴가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대한민국 살리기 집회’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선거제 개편은 지난 18대에서도 논의가 됐고, 정치권에서 꾸준히 논의했지만 ‘기득권’을 가진 정당의 양보가 없어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번엔 명백히 의석수에서 손해를 보는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을 위해 선거제 개편을 소수 야당에게 양보하며 물꼬가 터졌습니다. 6월 정개특위 의결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여당으로서는 추가경정예산안(추경)처리와 9월 이후 정기국회, 예산시즌에 맞물려 한국당을 완전 배제할 수 도 없었습니다. 집권여당으로서는 제1야당을 배제할 경우 역풍이 부담될 만도 했습니다. 그래서 특위 중에 한 곳을 한국당에 양보하고 60일의 시간을 벌었습니다. 어떻게든 합의안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도 읽혔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60일이 다 지나갑니다.
관련기사
정개특위는 60일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민주당이 정개특위 위원장에 홍영표 전 원내대표를 선임한 게 지난달 18일입니다. 지난 6월 28일 정개특위와 사개특위를 민주당과 한국당이 한 곳씩 맡기로 한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 이후 21일 만이었습니다. 홍 전 원내대표가 정개특위 위원장에 선임된 이후에는 단 두 차례의 간략한 회의만 열었을 뿐입니다. 그 사이 특위 위원들은 휴가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3일 전체회의를 열 계획이었으나 이 역시 무산됐습니다. 심하게 말해 60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한 특위’였습니다. 지금도 1소위 위원장을 어느 당이 맡느냐를 놓고 힘겨루기 중입니다. 사개특위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지난 5일 유기준 한국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선임된 후 여야 간사 회의조차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역시 시간은 한국당 편입니다.
■무의미한 과반의석..연합정치는 ‘숙명’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로 기록될 게 뻔합니다. 20대 국회 법안은 70%이상 계류 중인 상태입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법안 처리 최저 기록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소야대의 국회는 ‘협치’를 늘 강조했지만 제1야당은 협조에 인색했습니다. 그렇다고 여당이 협치에 적극적이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강대강’ 대치는 20대 국회의 수식어로 늘 따라 다녔습니다. 20대 국회의원 구성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19대 총선의 한국당의 공약이었던 국회 선진화법이 제도화되면서 어느 한 정당이라도 합의를 하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통과될 수가 없게 돼서입니다. 예를 들어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라면 선진화법이라는 절차는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장치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반면 제2당과 제3당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라면 선진화법이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회 선진화법을 폐기하지 않는 이상 국회 과반의석은 앞으로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협치나 연합정치는 이제 대한민국 국회에서 상수가 됐습니다. 그래서 선거제 개편이 더욱 중요합니다. 현행 제도로 내년 총선이 치러진다면 20대 국회 이하도 이상도 아닌 식물국회를 다시 만들어 놓고 여야간 대결로 다시 4년을 허송세월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를 이끌었던 당시 민주당 원내수석 부대표였던 이철희 의원은 최근 크리스티 엔더슨의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라는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의 해제를 들려드립니다. <한 선거에서 다수 득표를 한다고 해서 그 정당을 다수파라고 부를 수는 없다. 명실 공히 정당 일체감, 정당-유권자 정렬, 의회에서의 의석 수, 선거에서의 득표율 등을 종합해서 특정 정당이 안정적인 우위를 누릴 때 비로소 다수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이 개념도 더 정확하게는 다수 연합(Majority Coalition)이라고 불러야 한다. 유권자는 다양한 계층·지역·집단·이념 ·세대·종교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다수가 되기 위해서는 연합이 불가피하다. (중략)(미국)민주당에게 1932년 대선 승리는 우연이었다. 대공항을 초래한 공화당, 대공항의 패해를 방치하는 공화당에 대한 응징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우연의 승리를 다수파 형성의 계기로 잘 활용했다. 다시 말해, 공화당에 대한 혐오감에 편승해 윌슨 시기처럼 잠깐 집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사회경제적 노선으로 정치 질서를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대공항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미국 민주당을 더불어민주당으로 공화당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꿔 놓고 보면 어떨까요. 한국당이 자체 선거제 개편안을 놓고 협상 테이블에 앉기 보다 다시 장외투쟁을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 정치 100년을 좌우할 역사적인 선택이 8월 마지막 주에 결정됩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