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다. 계속 돌이켜보게 되는 그런 순간들…. 그를 만나기 전 내 삶은 단순하고 확고했다. 그리고 그를 만난 후는, 단지 ‘애프터’일 뿐이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애프터’는 여주인공의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어떤 만남을 기준으로 인생을 전과 후로 나눌 만큼 운명적이었던 사랑을 회고하는 이야기임을 암시하는 오프닝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그를 만난 ‘이후’ 열병처럼 달아올랐던 풋사랑의 추억을 낭만적으로 되짚는다. 대학 입학 후 처음 파티에 초대를 받은 신입생 테사(조세핀 랭포드 분)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진실 게임을 하다가 ‘키스’ 벌칙에 걸리고 만다. 상대는 반항기가 물씬한 매력남 하딘(히어로 파인즈 타핀 분)이다. 테사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집중하는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하딘의 키스를 거절한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강렬하게 이끌린 두 사람은 곧 뜨거운 연애를 시작한다.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로맨스 영화는 안타깝게도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 하딘이 테사를 자신만의 비밀 장소인 호숫가로 데려가는 대목처럼 섬세한 연출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찰랑거리는 호수에 몸을 담그고 키스하는 두 사람을 담은 이 장면은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의 설렘을 아름답게 포착한다.
그러나 이런 생기 있는 연출은 관습적인 클리셰를 남발하면서 이내 힘을 잃고 만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입맞춤 장면에 관객은 점점 심드렁해지고, 그 자체로는 충분히 멋진 배경음악들은 뻔하고 익숙한 화면이 이어지는 탓에 서사의 흐름을 고조시키지 못한다. 드라마의 결정적인 고비에서 인물이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과 관계에 균열을 내는 방식은 모두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하딘과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테사가 사귀었던 노아(딜런 아놀드 분)는 꽤 중요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기능적으로 소모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진로에 관한 테사의 결단을 담은 결말 역시 다소 뜬금없이 느껴진다.
솜사탕 같은 멜로 드라마에 대단한 메시지를 기대하는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문제는 성찰의 깊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달콤한 맛 없이 그저 밋밋하기만 한 솜사탕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극장을 나서면서는 영화 한 편을 관람했다기보다 1시간40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품의 크고 작은 결함들에도 북미와 유럽·남미 시장에서의 흥행 성적은 괜찮았다. 제작비 대비 400%의 수익을 올리면서 벌써 속편 촬영을 시작했다. ‘애프터’를 연출한 제니 게이지 감독 대신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으로 유명한 로저 컴블 감독이 속편의 메가폰을 잡는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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