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쑨원 주도로 신해혁명이 일어나 중국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출범한 뒤 뜻밖의 논란이 일었다. 새로운 표준어 채택을 둘러싸고 정부 내에서 격론이 벌어진 것이다. 베이징 중심의 푸퉁화(普通話)를 표준어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광둥어를 옹호하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의원 중 광둥성 출신이 절반을 넘었고 쑨원 또한 광둥성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표준어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한 표 차이로 광둥어가 탈락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쑨원이 동향 출신의원들을 설득해 없던 일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쑨원이 국론 분열을 우려해 통 큰 양보를 했다는 것이다.
광둥어는 당나라시절부터 중국 남부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언어로 남송시대에 전통 민속극과 민요 등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이 지역 토착민인 백월족이 사용하던 음가가 많이 남아 있어 북방 언어에 비해 고대 한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표준어와 달리 성조가 9가지에 달하고 동사를 매우 중시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행동을 앞세우고 결과는 나중에 따지는 광둥 사람 특유의 기질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인구만 따져도 홍콩·마카오를 비롯해 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와 미국·캐나다의 화교까지 합치면 1억1,000만명에 달하고 있다.
홍콩 헌법에는 중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못 박고 있다. 하지만 푸퉁화와 광둥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행정장관이 의회에서 모국어를 선택하라는 질문에 “쓸데없는 얘기에 답하고 싶지 않다”고 반박했던 일도 있었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홍콩 인구의 53.2%가 영어를 쓰며 푸퉁화 사용비율은 4%에 불과하다. 광둥어 사용인구는 88.9%에 달할 정도다. 하지만 광둥어가 점점 궁지로 몰리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중국 정부가 홍콩을 길들이려고 의도적으로 광둥어의 위세를 꺾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홍콩 침례대가 푸퉁화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시험까지 의무화하면서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 당국이 홍콩 교육과정에서 광둥어 시험횟수를 줄이고 듣기·말하기 과정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는 송환법 반대시위와 맞물려 홍콩을 철저히 복속시키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예로부터 정치권력은 듣기 좋은 말로 국민을 길들이고 지배력을 키워왔다. 자신의 말을 지키려는 홍콩의 힘겨운 투쟁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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