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건물은 그렇게 설계하시면 전시공간으로 쓰기 어려울 텐데요.”
지난 2011년 격무로 지친 몸을 회복시킬 겸 제주도로 요양을 갔던 최윤아 당시 스페이스포컨템포러리아트 실장은 우연히 현지에서 건립이 추진되던 한 박물관의 설계도면을 접했다. 직전까지도 아트선재센터와 그 관계사에서 예술교육·전시 업무를 해왔던 그에게 설계도면의 문제점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건물 면적에 비해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효율적으로 짜이지 않은 것이었다. 도와주려는 마음에 이것저것 자문해주다 넥슨과 인연이 깊어지게 됐다. 해당 건물은 넥슨이 제주도 사옥을 지은 후 추진하려던 컴퓨터박물관이었다. 그는 그 인연을 계기로 그해 넥슨의 지주회사 NXC의 전시사업 자회사인 NXCL 이사로 영입됐다. 2년 뒤에는 완공된 박물관과 NXCL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파격적인 NXC의 임용·승진 문화에 대해 최 관장은 “저희 회사에 들어와 일해보니 어떤 프로젝트가 있을 때 (도전적으로 자원해) 손들고 나서면 그 사람에게 믿고 다 맡기는 문화가 있더라”고 소개했다. 이어 “NXC의 그룹 규모는 거대하지만 지주사가 내부에서 일하는 방식은 벤처기업 스타일처럼 도전적이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는 ‘사업이 망해도 괜찮을 만큼만’ 소규모로 시작해보다가 안 되면 또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게 박물관 일을 맡길 때도 처음에 ‘이거 추진하다 망치면 어떻게 하느냐’고 겁을 냈더니 ‘괜찮다. 너무 크게 일을 벌이지는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라’며 일임하더라”는 일화를 소개했다.
회사의 일임에 자신감이 붙은 그는 과감히 박물관 기획을 손질했다. 원래는 전시관뿐 아니라 놀이공원까지 갖추려 했던 프로젝트였지만 부지 면적에 비해 과도하다고 판단해 테마파크 같은 요소는 빼고 전시·교육시설 중심의 박물관으로 방향을 잡고 사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국내외에서 정보기술(IT) 관련 역사를 배우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제주도 전반적으로 외부 관광객들의 유입이 근래에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해외 사례를 보면 지역 명소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지지를 받아야 하더라”며 “저희 박물관도 지역 발전에 계속 공헌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IT 및 전시 전문가로 변신했지만 그는 대학 시절 교육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교육공학도의 사회 진출 기회가 많지 않아 졸업 후 일반 회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후 배우자를 만나 전업주부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당시 진보적 국제 예술 조류를 과감히 국내에 소개했던 서울 종로의 아트선재센터에서 혁신적인 현대미술 등을 접하면서 예술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됐다. 그래서 아트선재센터에서 행사를 돕는 자원봉사자를 겸하며 미술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마침 당시 아트선재센터는 미술관을 거점으로 하는 예술교육 전문가인 ‘에듀케이터’라는 직종을 내부적으로 신설했는데 자주 내방하며 친분을 쌓게 된 최 관장을 정식 채용해 미술관 교육사업을 맡겼다. 이후 아트선재센터의 주도로 설립된 비영리 미술교육 연구기관인 인투뮤지엄 대표와 전시 전문회사 스페이스포컨템포러리아트 실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언젠가 나이가 더 들면 박물관 일도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와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IT 강국답게 IT와 전시·교육을 접목하는 기반을 다지는 데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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