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평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친구”로 불러왔다. 홍콩 사태 초기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내 친구 시진핑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23일 밤 중국이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조치를 발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며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인식을 내보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적(enemy)”이라고 규정한 것을 두고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해 보다 대결적인 전략으로 깊이 변화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기업에 중국과 거래하지 말고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하면서 지난 1977년 만들어진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까지 거론한 점이다. 이 법은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나 외교정책, 미국 경제에 특별한 위험이 생겼다고 판단하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를 근거로 자국민의 외환거래를 규제할 수 있게 돼 있다. 3월 기준으로 미국은 총 54건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이 중 29건은 지금도 효력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법은 교역 상대국과 경제적 관계단절을 위한 게 아니라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나 개인을 제재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이나 남중국해에서의 군사력 증강을 이유로 중국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앞서 미국이 1994년 이후 25년 만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만큼 비상경제권법을 발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비관세 장벽으로 커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페덱스와 아마존, UPS를 언급하며 중국 또는 다른 어떤 곳에서 오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의 배송을 찾아서 거부하라고 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중국의 추가 관세보복은 트럼프 대통령을 놀라게 했다”며 “유지보수 목적으로 화웨이가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있도록 내준 임시면허를 취소하는 방안도 미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도 미국의 위협에 강 대 강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75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중국 전·현직 지도자들의 비밀회동인 ‘베이다이허 회의’ 직후에 나온 결정이다. 이는 중국 최상층부가 미국에 맞서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는 데 합의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이 ‘중국판 블랙리스트’ 공개를 비롯해 당분간 대미 강경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5일 사설 격인 종성(鐘聲)에서 “5,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인상 방침은 양국 정상이 약속한 상호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고 국제질서와 세계 경제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내부 의중을 드러낸다는 평을 듣는 후시진 관영 환구시보 편집장은 “중국은 ‘노 딜’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향후 중국의 추가 보복 조치에 관심이 쏠린다. 우선은 22일 중국 상무부가 중국판 블랙리스트인 ‘신뢰할 수 없는 실체 명단’을 곧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이것이 보복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매체들은 페덱스와 HSBC 외에 최근 대만 무기판매에 연계된 미국 기업들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희토류 수출제한이나 미 국채 매각, ‘포치(破七)’된 위안화의 추가 평가절하도 거론된다.
미중 대결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미국이 추구하는 무역전쟁으로 세계 경제 전망이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경제방송 CNBC는 “미중 갈등 격화로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당장 중국이 12월부터 미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업체인 포드와 테슬라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포드는 중국 시장 점유율이 20%, 테슬라는 7%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국 내부에서도 무역전쟁의 확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데이비드 프렌치 전국소매협회(NRF) 선임부회장은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들이 미래를 계획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미국 업체들이 세계 2위의 경제(중국)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CNN도 “정부가 기업에 명령하는 것은 미국의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베이징=최수문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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