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1일 일본 관동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민심이 흉흉해지자 “방화하려는 무뢰한이 있다는 소문이 돈다”며 경계 공문을 관동지방에 보냈다. 무뢰한은 이 지역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를 가리킨 말이었다. 공문을 계기로 관동지방 곳곳에서 무뢰한을 검거하기 위한 민간조직이 결성됐다. 이들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어 넣었다” 등의 유언비어를 만들며 조선인 색출에 나서 죽창으로 찌르고 불에 태워 죽이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수천명의 조선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동대학살이다. 관동대학살에서처럼 경찰 대신 민간인이 자기 지역의 치안을 유지한다며 스스로 만든 조직을 자경단이라고 한다. 자경단은 그들이 내세우는 치안 유지보다는 사적인 제재와 처벌에 치중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는 경우가 많다. 세계에서 제일 악명 높은 범죄조직인 마피아도 출발은 자경단인 것으로 전해진다. 마피아는 1300년께 시칠리아가 무법 상태에 있을 때 토지 보호를 위해 지주들이 만든 소규모 사병 조직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주축이 돼 만든 서북청년회 또는 서북청년단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쫓겨난 이들은 좌우익의 이념 대립이 극심하던 당시 반공을 기치로 내세우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제주 4·3사건에서 서청은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청 소속이었다. 요즘에는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자발적으로 치안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사이버 자경단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 제주도에서 카니발 차주가 옆 차선에 있는 아반떼 차주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네티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폭행 영상이 온라인에 올라오자마자 사이버 자경단으로 유명한 보배드림에는 공개수배 글이 게시됐고 가해자는 바로 잡혔다.
멕시코에서 요즘 자경단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놓고 정부 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무차관이 현지 자경단 지도자를 만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며 칭찬하자 대통령이 자경단을 불법 단체로 규정하며 “치안은 국가가 담당한다”고 선언했다. 자경단 논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치안이 불안하다는 증거다. 국가가 치안을 유지하지 못하니 이래저래 시민들의 불안만 커지는 것 같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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