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초·중등학생 유튜버들 사이에 ‘저격영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저격영상이란 슬라임을 손으로 가지고 노는 영상을 배경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저격’은 주로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 간에 이뤄진다. 저격 이유는 ‘영상 편집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언행이 부적절하다’ 등 사소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콘텐츠가 청소년들의 공격성을 키우고 자칫하면 ‘사이버 불링’(사이버 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이나 ‘개인정보 유출’ 등 범법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사고 있다.
약 2,500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 유튜버는 지난 6월 특정 유튜버가 아닌 ‘실친(실제 친구)’를 저격하는 영상을 업로드 했다. 해당 유튜버는 “평소 친한 동생을 저격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친구에 대한 저격을 이어갔다. 이는 상대방이 앞서 그를 향해 제작했던 ‘저격영상’에 다시 반박하는 형식이었다. 친구들끼리의 감정 싸움이 유튜브라는 공개적인 장소에 오롯이 노출된 것이다. 이 유튜버는 영상 속에서는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근거로 ‘삐진다’, ‘엄청 나댄다’ 등의 이유를 일일이 열거했다. 해당 영상은 게시 후 두 달 이상 지난 현재를 기준으로 52만 회 이상 조회됐다.
동영상 앱 ‘틱톡’ 상에서 제작된 한 저격영상에서는 실제로 상대방의 개인정보인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기도 했다. 지난 25일 한 커뮤니티에 ‘틱톡 이거 신고해도 됨?’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 작성자는 “틱톡 유저가 누군가의 저격영상과 함께 번호를 유출했다”며 “사이버상에서는 남의 정보 유출하는 것이 안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신고해도 될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다른 유튜버는 ‘저격영상’에서 다른 유튜버의 아이디를 조롱하면서 “왜 XX 채널이 구독자 45만 명인지 모르겠다”, “다 컸으면서 행동은 XX 같다”라고 비난했다. 저격 대상 유튜버가 “영상을 도용한다”, “계속 욕하고 시비 걸었다”는 등의 이유로 비난하는 영상도 있었다. 이 같은 영상의 제작자들은 거의 대부분 초·중등학생이다
특이한 점은 저격영상의 대부분이 모두 ‘슬라임’ 영상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슬라임이란 반고체 형태의 투명한 장난감으로, 10·20 세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별다른 촬영·편집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10대들도 손쉽게 슬라임 영상을 제작하여 업로드 할 수 있었고, 이런 문화가 하나의 ‘장르’로 굳어져 가는 과정에서 ‘저격영상’까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타인을 저격하는 콘텐츠 자체는 유튜브 유저들에게 특별히 낯선 콘텐츠가 아니다. 기존 유명 BJ나 인기 유튜버들이 서로를 공개적으로 저격하고 과거사를 폭로하는 등의 콘텐츠가 이미 플랫폼 상에 수많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격을 받거나 ‘강제 폭로’를 당한 유튜버들은 댓글로 네티즌들의 ‘해명’ 요구를 받고, 진지하게 그들에 관련한 의혹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해명 영상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업로드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표현 수위가 청소년들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한 경우가 대다수다.
문제는 10대들의 ‘저격영상’이 어른들의 저격 콘텐츠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유튜브 채널이나 유튜버를 지칭하고 실수나 잘못을 오목조목 따지고 드는 모습이 꼭 어른들의 것과 비슷하다. 저격 후 해명을 요구하는 순서까지 같다. 실제로 대상이 저지른 잘못보다 상대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비난하는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저격영상의 댓글을 살펴보면, 비판 내용에 공감하거나 반대하는 구독자의 토론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가치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청소년기의 높은 자아중심성 그리고 쉽게 분노하거나 동요하는 속성이 10대들을 이 같은 행위에 쉽게 빠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유튜브 등 SNS 상에서의 저격은 앞서 말한 관심 끌기의 좋은 수단으로 자아중심성의 발현에 최적의 도구와 주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을 둘러싼 척박한 사회환경과 기성세대가 오늘날 청소년들로 하여금 공격성을 키우고 온라인상에서 윤리의식이 결여된 행동을 하게 하는데 주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며 “어른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송윤지 인턴기자 yj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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