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28일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제외 시행령 강행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 총리는 일본에 “대화에 성의 있게 임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대응을 위한 확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당초 이날 회의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시행령을 강행함에 따라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확대관계장관회의를 겸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특정국가 과잉의존 탈피…업계와 함께 할 것”
이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일본이 부당한 조치를 계속하는 것을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일본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한일관계의 복원을 위한 대화에 성의있게 임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리는 “그런 대화와 별도로 우리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미 정부는 백색국가 제외 대응방안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차례로 내놓았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오늘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대책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우리는 일본의 태도와 무관하게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긴 안목으로 일관되게 키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언급했다. 이 총리는 “특별회계를 설치하고, 앞으로 3년 동안 소재·부품·장비 R&D에만 5조원 이상을 투입할 것”이라면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연구수행기관 선정절차 간소화 ▲산학연 연구협의체 운영 등을 통한 R&D 기간 단축 등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또 이 총리는 “R&D 생태계를 혁신해 연구역량을 최대한 결집하고 R&D 성과의 상용화를 극대화하겠다”며 “민관합동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곧 가동해서 모든 과정을 점검하고 대책을 보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미 정부는 관계기관 합동의 ‘소재·부품 수급대응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기업의 애로를 해소해 왔다”며 “정부는 지금까지 약 3,000건의 상담을 통해 재고 확보, 대체수입선 확보, 국내 생산시설 확충 등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리는 “그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또한 우리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조치를 바로잡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차질없이 진행하고 모든 분야에서 특정국가 과잉의존을 확실히 탈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민관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총리는 “그 과정을 업계와 함께 하겠다”며 “업계의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日, 韓 백색국가 배제 강행…韓 대화 제의 계속 거부
일본 정부는 이날 한국을 수출 관리상의 우대 대상인 ‘그룹A(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을 시행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각의(국무회의) 결정한 뒤 7일 공포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화의 손길을 내민 것을 비롯해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등 다양한 계기를 통해 수 차례 일본에 관련 조치 철회를 요구했지만, 일본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7일에는 이 총리가 나서서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부당한 조치가 시정되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며 설득에 나섰지만 이 역시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은 3년 단위로 1번 심사를 받으면 개별 허가를 안 받아도 되는 ‘일반 포괄 허가’를 거쳤지만, 이번 조치로 앞으로는 개별 허가를 받거나 ‘일반 포괄 허가’보다 훨씬 까다로운 ‘특별 일반 포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비전략물자의 경우에도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캐치올(상황 허가·모든 품목 규제) 제도’가 적용된다.
적용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규제 강화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자국 내 수출 관리 방식의 변경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조치가 지난 해 10월 이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라는 것은 일본 언론조차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인 레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가지 소재에 대해 일본 기업의 한국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제1차 경제 보복 조치를 감행했었다.
/정영현·노희영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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