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문 매체 더 리얼 딜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리츠칼튼호텔 상층부에 자리한 2층짜리 최고급 펜트하우스가 최근 4,900만달러(약 595억원)에 매물로 나왔다.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호화주택의 가격은 지난 2012년만 해도 9,500만달러를 호가했다. 7년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최근 유명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도 맨해튼 트라이베카 지역에 있는 펜트하우스를 지난해보다 26% 낮은 1,825만달러에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지난해 8월 이 펜트하우스를 2,460만달러에 내놓았지만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두 번째로 호가를 낮춘 것이다.
경기비관론에 휩싸인 미국 부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맨해튼 고급주택 가격이 줄줄이 급락하고 고가 자동차와 미술품 구매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상류층의 지출이 줄어들면서 경기침체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올 2·4분기 미국에서 150만달러 이상 주택 판매는 전분기 대비 4.6% 감소했다. 1·4분기(-13.8%)보다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나 3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CNBC는 “콜로라도주 애스펀과 뉴욕주 햄프턴의 호화 부동산 매물이 약 3년 만에 최대 수준이고 미분양 저택도 전국적으로 쌓이고 있다”면서 “고가주택 시장이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에서도 상류층의 소비감소가 두드러진다. 맨해튼 매디슨가에 본점을 둔 명품 백화점 바니스가 경영난에 허덕이다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중산층이 이용하는 유통업체 월마트와 타깃이 2·4분기 깜짝 실적을 보이며 주가가 급등한 것과 비교된다.
자동차와 미술품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달 열린 페블비치 자동차 경매에서 판매된 100만달러 이상 고가차량은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반면 7만5,000달러 이하 차량은 예상보다 더 많이 팔렸다. 미술도 상반기 소더비 경매장 매출이 1년 전보다 10%, 크리스티의 경우 22%나 급감했다.
반면 지난 2년 동안 부유층의 저축액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이들이 소비 대신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얘기다. CNBC는 “미국 주식의 80% 이상을 보유한 상위 10%의 부유층은 최근 주식과 채권 변동에 훨씬 민감하다”며 “변동성이 큰 시장과 세계성장 둔화가 상류층 소비부진의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부자들의 소비감소가 미국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보고 있다. 상류층의 소비축소는 기업들의 실적 하락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잰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상위 10% 소득자가 전체 소비지출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며 “이들이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경제에 상당한 위협”이라고 경계했다.
게다가 부유층의 경기비관론이 중산층에까지 퍼질 경우 급속한 경기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이미 미국인들의 경제전망은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퀴니피액대가 21~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37%는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좋아질 것이라는 답은 31%, 현상 유지를 예상한 답은 30%였다. 해당 조사에서 경기비관론이 낙관론을 앞지른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처음이다.
미국 상무부는 29일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정치를 2.0%로 발표했다. 한 달 전 내놓은 속보치(2.1%)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는 1·4분기에 비해 1.1%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하반기 경제성장률은 1%대까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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