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데 이어 1일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 불참을 통보하며 미국에 대한 압박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고강도의 경고 메시지를 잇달아 보낸 것은 연내로 정한 비핵화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대미 공세를 통해 비핵화 방안과 관련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재선을 목전에 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역시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에 따른 제재완화를 수용할 경우 비난 여론에 휩싸일 가능성이 큰 만큼 북미 비핵화 협상은 연말까지 표류할 것으로 관측된다.
1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이번 뉴욕 유엔총회의 일반토의 기조연설자로 리 외무상이 아닌 대사급 인사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7일 개막하는 유엔총회의 하이라이트 격인 ‘일반토의(General Debate)’는 각국 고위급 인사들이 대표로 참석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다. 외교가에서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리 외무상 간의 북미 고위급 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리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불참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 전까지는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강경 기조가 재확인됐다.
앞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도 전날 담화문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를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떠밀고 있다”며 대화의 판을 깰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미국에 보냈다.
북한이 실무협상에 응하지 않는 것은 결국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등 일괄타결 식 빅딜이라는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벼랑 끝 전술로 분석된다. 미중 갈등이라는 동북아의 정세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조기 대화 재개보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압박이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기사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이제 9월이다. 그러니 북한 입장에서는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9월·10월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형성됐을 것”이라며 “8월 한미연합훈련이 끝나고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비핵화 협상을 위한 본선에 와서 결판을 내자는 신호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최대 제재압박에도 장기전을 불사하며 미국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데는 중국이라는 든든한 우군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동북아의 패권을 두고 미국과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밀착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중국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곧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외교가에서는 왕 국무위원의 방북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답방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북한의 태도가 강경론으로 기운 것을 감지한 미국 역시 김 위원장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와 경제제재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북한을 겨냥해 “전 세계 너무 많은 곳에서 강제실종이 권위주의 정권의 손에 의해 정기적으로 일어난다”고 비판했다.
미국 재무부도 이날 정제유 제품과 관련해 북한과의 불법 해상 환적에 연루된 대만인 2명과 대만 및 홍콩 해운사 3곳(대만 2곳, 홍콩 1곳)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이 길어질 경우 정치·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 리스크’가 부각되는 것이 재선 정국에 좋지 않기 때문에 양국의 깜짝 실무협상 재개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올해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내년 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것이라는 의미”라며 “북미는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다가 12월 즈음에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