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돌리기 위해 갑자기 대학 입학제도 개편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히 논의돼야 할 교육정책의 핵심인 입시제도마저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문 정부 출범 초기 ‘수시 확대’ 기조였던 대입 제도가 숙명여고 사태로 ‘정시 30% 룰(대학들이 정시 비율을 30% 이상 유지)’을 채택하고 이제는 조 후보자 문제로 다시 널뛰기하는 등 학부모·학생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는 2일 조 후보자 딸 논란으로 촉발된 대입 제도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곧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상신 교육부 대변인은 이날 세종 교육부 청사에서 진행된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 동남아시아 순방을 수행 중인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귀국한 4일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의 이번 논의는 대입뿐 아니라 교육체계 전반에 대해 다룰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변인은 “대입 제도만 손본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닌 만큼 고교교육까지 같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며 “2022학년도 입시 계획에는 큰 변동이 없지만 학생부 종합전형 방법 개선 등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전날 문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 조 후보자 딸의 대학 입시 의혹에 대해 “조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의 차원을 넘어서서 대학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해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입시제도 개편 발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조 후보자를 장관으로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뜬금없이 입시 개편을 주도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학부모 위주 시민단체인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문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조 후보자를 살리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며 “진정으로 교육에서의 기회균등 가치를 실현하려면 불공정한 대입 제도의 상징 같은 조 후보자의 지명철회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문 정부 들어 대입 제도가 각종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오락가락하는 점도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 문 대통령은 후보 당시 대입 제도 공약으로 수시 비중을 확대하고 수능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제시했다. 일반고 정상화 등을 위해서는 수능보다 학교생활 중심의 학생부 종합전형이 바람직하다는 김상곤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진보 교육계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수시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정부는 여론에 편승해 대학들에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라고 압박하면서 입장을 급선회했다. 이후 조국 사태까지 터지면서 대입 정책이 다시 한번 변화의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정부의 이번 대입 제도 개편 추진에 대해서는 교육 전문가들도 “뜬금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제도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고교교육 정상화, 사교육 근절, 대학 자율화 등 거시적 차원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고 주장했다. 진보 교육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이번 정책 추진이 조 후보자 개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현진 전교조 대변인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대입 제도가 조 후보자 개인 문제로 전면 재검토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가 약속한 교육 공약은 지키지 않고 숙명여고·조국 등 사건들에 휘둘리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이날 “조 후보자부터 정리하는 게 순서”라며 대통령의 우회적 대입 제도 개편 발언에 대해 비판했다.
이번 ‘조국 사태’는 현 고등학교 3학년들에게도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날 진학사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3 수험생 중 43.7%가 대입 제도 가운데 수능이 가장 공정한 평가라고 답변했다. 수능 다음으로는 중간고사·기말고사인 학생부 교과전형이 33.1%로 높았고 학생부 비교과(12.4%), 대학별 고사(6.2%) 순이었다. 특히 조 후보자 자녀가 대학 진학에 이용한 ‘학생부 비교과’ 전형은 응답자의 12.4%만이 공정하다고 평가해 이와 관련한 학생들의 불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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