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와 관련해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뿐 아니라 일반 기관투자가 전반으로 확대 도입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물론 조 후보자가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되고 난 후 스튜어드십코드에 관여할 입장은 아닐 것이다. 지난 정권에 이 코드 도입을 추진한 정부기관은 금융위원회였고, 지난해 7월에는 국민연금도 이를 도입했는데 그 결정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민연금에서 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업들에 이 코드에 가입하라 말라 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다.
다만 조 후보자가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서면 정책질의 답변서에서 스튜어드십코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위 경제검찰이라는 기관의 장으로서 국내 60개의 대규모 기업집단을 감시하는 임무를 가진 지위에서는 이 코드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 스튜어드십코드를 일반 기관투자가 전반으로 확대 도입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이를 활용하면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튜어드십코드는 자율규범(soft law)이다. 기본 원리도 ‘건전한 목적을 가진 대화’, 즉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이다. 이는 기업이 주주들이 제시하는 제안을 따르되, 따를 수 없는 경우 설명해달라(comply or explain)는 것이 핵심이다. 일단 설명을 듣고 맘에 들면 찬성, 그렇지 않으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면 된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업과 주주의 대화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이다. 다만, 이를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공직자의 인식이 문제인 것이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자율규범일 뿐 정부가 언제든 휘두를 수 있는 칼이 아니다.
둘째, 조 후보자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연금사회주의 우려에 대해 ‘지나친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3월 주주총회 시즌에 한국 일부 대기업에서 발생했던 사태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손가락 하나 아플 일 없는 정책당국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일 수 있고 펀드 입장에서는 즐겁기까지 했을 법하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총회 시즌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빌미로 경영권을 위협하는 세력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서는 악몽 같은 시간이 됐다. 자율규범에 불과한 제도가 어쩌다 이런 괴물로 변했다는 말인가.
셋째, 국내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낮다며 경영권 방어수단의 하나인 ‘포이즌필(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 부여)’ 도입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국 기업이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대상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은 옳다. 그런데 어떤 세력이 실제로 한국 기업을 M&A하겠다면 이는 한국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므로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법 제도가 미비해 포이즌필도 갖추지 못한 한국 자본시장을 맘껏 유린한 다음 단물만 빼먹고 빠져나가는 것, 이른바 ‘먹튀’다. 이 먹튀를 방지하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적대적 M&A를 방지하는 방법으로 방어해야 한다. 그래서 적대적 M&A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에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투자하고 스스로 책임지면 된다. 국가기관이나 기관장이 자산운용사들에 자율규범에 불과한 스튜어드십코드에 가입하라 말라, 의결권을 행사하라 말라 할 이유가 없다. 고객의 위탁을 받은 기관투자가들의 본분은 될성부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지 그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냉정한 투자의 세계에서 본분을 벗어난 행동은 화를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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