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생존자’는 올바른 사람들이 모여서 에너지를 바른 곳에 쓰며 만든 작품이에요. 서로 즐겁게 일에 충실히 임한 게 시청자들에게도 와 닿아서 저희 작품을 좋아해준 것 같아요.”
배우 이준혁이 ‘60일, 지정생존자’를 하며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 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어렸을 때부터 타인이 만든 영화를 2000편 넘게 보고 자란 이준혁은 “남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고 생각했던 반면 ‘지정생존자’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었다. ”고 자평했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극본 김태희/연출 유종선) 종영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이준혁은 “결국 그런 소통이 일의 즐거움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정생존자’를 촬영하는 시간이 제게 뜻 깊게 남았다”며 행복한 웃음을 보였다.
“일단 이런 인터뷰를 하게 해준 작품이다. 또 시청자들이 작품을 보는 취향이 정말 다양해졌다고도 느꼈다. 정치를 다루는 드라마인데도 ‘사람들과 작품으로 소통할 수 있구나’, 그리고 ‘이 소통도 괜찮은 일이구나’라고 깨닫게 해줬다. ”
오영석은 자신의 신념이 곧 선이며, 자신의 행동이 악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 인물. 이준혁의 입을 통해 들은 ‘오영석’은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다”고 설명했다. 동명의 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원작 속 오영석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원작 캐릭터보다 더 묘한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
“오영석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악의 무리는 만난 인물이다. 오영석을 마치 100여년 전 죽어있는 상태의 유령처럼 몇 살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보이도록 노력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오영석이 과연 싱글일까? 부모는 있을까? 보이는 대로의 나이가 맞을까?’ 라고 고민했으면 했다. 마치 인간 같지 않은 느낌으로 존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드라마에도 오영석이 가질 수 있는 예민함을 보여주는 장치를 많이 넣었다고 생각한다. ”
“이전에 모차르트의 일생을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 적이 있다. ‘아마데우스’에서 천재(모차르트)가 멍석에 말려 죽는 장면에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오영석도 그렇게 천재적으로 시작하지만 욕심의 끝과 허무함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다가왔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 오영석. 이준혁은 오영석과 친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강력한 안보 정책으로 국민들의 신임을 받지만 사실 오영석은 폭탄 테러의 배후였다. 그는 “작품 당시 오영석과 많이 싸웠다. 그러나 많이 싸운 만큼 정도 들었다”고 했다. 오영석이 죽는 장면을 방송으로 보고선 “친구가 하나 없어진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물론 “오영석의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기능이 끝났을 때 떠난 느낌이라 허무한 죽음이 더 좋았다”는 말도 빼 놓지 않았다.
오영석은 악의 축에 선 인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악역을 향한 응원이 이어졌다. 이는 이준혁의 열연이 있어 가능했다. 특히 그가 빌런임이 밝혀졌을 때, 한편으로 오영석을 이해시켰다. 테러 배후면서도 국민의 한 사람이자 상처를 지닌 인물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기 때문. 이준혁의 내면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영석은 극의 흐름상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존재감을 지워야 했다. 서사가 많이 보이지 않는 인물이기에 박무진이 성장할수록 내 존재는 쓰임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박무진의 그림자가 돼야 했다. 연령대에서도 리얼리즘을 뺐다. 실제 권한대행이라면 50대가 맞겠지만 오영석은 나이도 불문인 미스터리한 느낌이 강해보였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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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준혁은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 드라마 ‘비밀의 숲’ 등에서 존재감 있는 악역을 선보였다. 그에겐 악역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그 인물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저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기분이다. 이번엔 오영석이라는 사람이 저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와 함께 6개월을 살면서 그 사람의 말을 깊숙이 경청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제 의견을 말했다. 그렇게 두 가지 목소리가 섞여서 나오는 것이 연기의 결과물이다.”
완전 내향적인 성격을 지닌 이준혁은 스스로를 ‘핵아싸‘(핵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지칭했다. 자신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생겨서 ’너무 좋다‘고 말하는 이다.
“요즘 유행어인 ‘핵아싸‘(핵 아웃사이더의 줄임말. 혼자 지내는 걸 선호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란 단어가 너무 좋다. 나를 하나로 지칭할 수 있어서다. 연기를 할 때의 나도 진정한 ‘핵아싸’인 것 같다. 나는 없고 오로지 오영석만 있기 때문이다. ”
허황된 욕심이 없는 편인 이준혁의 생활 신조는 “내가 할 일을 잘 하자. 주변을 잘 챙기자”이다. 이번 인터뷰에선 “헤어 스타일과 메이크업 및 의상을 담당하는 스태프 친구들 덕분에 잘 생겼다는 칭찬도 들을 수 있었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에이스팩토리]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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