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한기범은 아버지의 유전으로 어려서부터 키가 컸다. 큰 키 덕분에 농구를 시작한 그는 일찍이 가능성을 보여 곳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대학 시절부터 그 능력을 꽃피우기 시작해 1989~1990 시즌에 농구대잔치 MVP에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한기범은 허재, 김유택, 강동희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농구 전성기를 열었다. 특히 대학팀 시절, 실업팀을 꺾은 최초의 대학팀을 이끌기도 했다. 프로 농구가 개막하기 직전, 오랜 무릎 부상으로 은퇴를 하지만 그는 개인상, 팀 우승, 국가대표 등 농구 선수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경력을 거치며 농구계의 전설이 됐다.
하지만 그는 심혈관계와 눈, 골격계의 이상을 유발하는 유전 질환인 ‘마르판 증후군’으로 인해 이후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아버지에 이어 동생마저 유전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예방 차원의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혹시나 두 아들도 유전병을 물려받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라며 본인이 수술받았던 병원을 아들과 함께 찾아가는 등 아들들의 상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관련기사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선수 은퇴 후 홈쇼핑에서 ‘키 크는 건강식품’을 파는 등 연이어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해 집을 3채나 날려 산동네로 이사 가야 했고, 큰아들이 틱장애와 자폐증 증상을 앓는 등 한기범 가족은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특히 2006년쯤 심장 수술을 다시 받아야 했는데, 생활고로 수술을 못할 지경이 되자 한기범은 직접 심장재단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 겨우 수술을 받고는 “꼭 (받은 도움을) 갚을 거야”라고 결심했다. 이후 건강을 되찾은 한기범은 ‘희망나눔재단’을 세워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후원활동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아직 농구가 좋다”며 “이제는 농구를 통해 ‘희망’을 나누고 싶다”는 한기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다는 한기범의 이야기는 오늘(4일) 밤 10시 TV CHOSUN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주원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