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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勞에 대한 부채의식 못벗어나면 경제활력 기대 어렵다"

<조남홍 전 경총 상근부회장>

정의롭지 못한 노조 행태, 한국 경제 최대 리스크

현 정권선 애당초 '노동개혁'이란 존재하지 않아

DJ·노무현 정부도 집권 후반기 현실주의로 선회

고용형태·작업방식 다양화로 생산성 향상 절실





한때 ‘유럽의 병자’로 조롱받던 프랑스는 요즘 투자가 늘어나고 실업률이 떨어지면서 활력을 되찾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까다로운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에 초점을 맞춘 노동개혁을 단행해 경제에 숨통을 터줬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해 집권 3년차를 맞은 마크롱 대통령의 결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로서는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뚫고 노동개혁에 나선 마크롱 정부의 추진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노사문제 전문가로 활약했던 조남홍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개혁은 고통을 수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면서 “문재인 정부도 노동계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나 단호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5일 서울경제신문 본사 회의실에서 3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애써 일궈온 노사관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현재 노사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많다. 과거 정부와 비교하면 어떤가.

△이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계가 원하는 정책은 빠짐없이 들어줬다. 노조는 단체교섭을 벌일 때마다 과도한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파업을 활용하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 기업들은 적극적인 방어수단이 없다 보니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를 수용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 있다. 게다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까지 밀어붙이는 바람에 노사관계의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만약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더 강화된다면 누구나 노조를 만들 수 있거니와 사측은 모든 단체교섭에 의무적으로 응해야 한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정부에 비해 노사 균형이 허물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조활동의 권리를 폭넓게 허용한다면 당연히 기업경영의 권리도 대등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조남홍 전 경총 상근부회장은 과거 진보정권도 집권 후에는 경제현실을 고려해 노동계와 거리를 뒀다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바로잡고 합리적 노사관계를 중시하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승현기자


-정부가 노사문제에 공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노사문제는 본질이 뚜렷하다. 노조가 불법행위를 했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 남의 건물에 무단침입해 농성을 벌이는데 처벌을 안 하겠다면 차라리 이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폭력을 용인하는 법이 가능하겠나. 그게 바로 인간의 윤리이자 사회의 기본질서다. 지금 노동계의 행태는 법적 처벌 여부를 떠나 정의롭지 못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벌을 비판하고 보수세력을 공격했지만 마냥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노사관계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볼 수 있다. 노조문제도 국정을 운영해보니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며 생각을 바꿨다. 대통령에 당선될 때는 노조의 힘을 빌렸지만 후반기에는 오히려 노조를 견제하게 됐다. 노동계의 요구에 맞서 ‘너무 이르다’거나 ‘너무 과하다’며 오히려 기업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줬다. 노 전 대통령이 결국 노동계와 척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반면 현 정부는 노동계에 신세를 졌다며 상당한 부채의식을 안고 있다. 표가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논의했지만 현 정부는 이미 방향을 결정해놓고 모두에게 따라오라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현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노동개혁이란 우리 사회와 경제구조를 개선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여건을 담보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내부의 조직이나 규정을 바꾸는 것이다. 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어느 일방에 유리한 근로조건을 바꾸고 비대해진 노조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정부 들어 노동개혁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다만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과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를 세우고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제로화,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해왔다. 이는 산업현장의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고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노동정책의 중심을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제도 개선으로 옮겨야 할 때다. 이런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뒷받침돼야 침체된 우리 경제에 활력이 살아나고 기업들도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반드시 노동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들은 정부와의 대화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기업과 정부의 바람직한 관계란.

△예전에는 정부에 쓴소리를 많이 했다. 사안별로 논리나 당위성의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이지만 합리적인 논리로 설득하면 상당 부분 먹혀들어갔다. 물론 공격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그때는 논쟁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곧바로 주먹이 날아온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몇 차례 우리를 청와대로 불러 허심탄회하게 식사를 같이하며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수첩에 일일이 메모를 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절로 생기더라.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지금 기업들은 숨이 탁탁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다. 무엇보다 그걸 풀어줘야 한다. 기업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를 해야 한다. 그러면 기업들이 열심히 뛸 것이다. 정부가 원하는 것도 모두 가능해질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도 같이 밀고 나가야 힘을 얻게 된다. 진정성을 갖고 얘기를 한다면 먹힐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화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실제 어느 정도 수준인가.

△노동시장 유연성 측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제도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은 달리 보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전문가그룹으로 볼 수 있다. 남다른 노하우와 능력이 있다면 많은 월급을 받는 게 정상이다. 우리나라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잘못된 의식부터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 그러자면 고용형태와 생산방식의 다양화를 보장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고비용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해고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제도도 그렇거니와 돈도 너무 많이 든다. 한국이 터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높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사실상 제로 수준인 미국과 어떻게 경쟁하겠나.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해고비용을 줄이겠다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우리는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노동비용 증가가 기업 경쟁력 훼손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많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부족한 현실에서 일률적인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들은 일감을 포기하거나 법 위반을 무릅쓰고 연구·생산활동을 지속하는 등 부담을 떠안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노동비용만 늘어나고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기업들이 생산성 제고를 위한 시설투자나 교육훈련에 나설 여력이 떨어지면 생산성 향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산업현장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노사가 서로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대립적·투쟁적 관계에서 벗어나 협력적·생산적 노사관계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또한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개혁하고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것도 중요하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업무 분담을 체계화하고 근무윤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하는 방식과 근로문화를 개선하는 한편 산업계의 수요를 반영한 교육·훈련체계를 구축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정부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은데.

△김영삼 정부 시절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는데 복수노조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었다. 당시 노사개혁위원회에 참여해 경총에서 복수노조를 허용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경영계에서 불가능하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공짜가 아니라 노조 전임자의 급여 지급 금지와 패키지로 묶어 협상에 나섰다. 사회적 대타협의 원칙은 서로 한발씩 양보하면서 주고받는 것이다. 노사정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희생과 양보를 하자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도 마찬가지다. 노동계와 사용자·정부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일자리를 늘리고 세금을 줄여주는 등 조금씩 양보를 했다. 하지만 우리 노동계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양대 상급노조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어렵다.

-최근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이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사업전망은 어떻게 보나.

△지역일자리사업의 성공 여부는 진정한 산업경쟁력을 갖췄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만약 합리적 노사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수도권 규제와 관련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차지할 정도로 특정 지역에 집중된 인구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터에 도시마다 공장을 만들어 제대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우리의 인구분포로 볼 때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경제단체의 역할은 무엇인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경제단체들은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경제상황을 예측하고 적절한 대책도 수립해야 한다. 경제단체를 떠받치는 회원사를 대상으로 적절한 서비스는 물론 정부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로비활동도 펼쳐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좋고 정부도 좋다. 이제는 개별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기업 간의 협력을 통합해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정부도 경제가 어려울수록 경제단체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He is…

193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62년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경제기획원과 상공부·무역협회 등을 거쳐 1994년부터 10년간 경총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경총 부회장 시절 복수노조, 주 5일제 등 노사 협상 과정에서 원리원칙을 중시하며 경영계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노동계를 겨냥한 발언이 세다는 이유로 ‘조폭’ ‘싸움닭’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고 한다. 2009년 노사관계 실화를 담은 ‘파업윤리가 필요하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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