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EXIT, 감독 이상근)’가 개봉 35일 만인 지난 5일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 여름 최고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 분)이 대학 시절 산악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 분)와 우연히 만나 도심속 유독가스 테러 현장을 빠져나가는 우여곡절을 그린 영화 ‘엑시트’는 두 주연배우의 코믹 연기에 더해 재난 영화 특유의 긴박감과 아찔함까지 갖췄다.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과 청년들의 고민까지 잘 담아낸 훌륭한 한 편의 상업영화이자, 대한민국 재난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객 입소문을 탄 영화 ‘엑시트’는 개봉 한 달이 지났음에도 박스오피스 순위를 역주행하면서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도시재난 생존전문가 우승엽(46) 생존21 도시재난생존연구소장은 이 영화를 보고 “기대한 것보다 일상 생활 속 생존법들을 현실적으로 많이 다루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평가했다. 그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쓰레기 비닐봉투, 스마트폰 플레시를 이용한 ‘SOS’ 신호 보내기 등 마치 전문가 자문을 받은 것처럼 현실 생존법을 영화 속에 잘 보여줬다”면서 “일반인들에게 생존 지식을 알린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영화 ‘엑시트’와 현실 재난 탈출법의 차이는?
우 소장은 영화 속에서 유독가스를 하얗게 표현한 장면이라든지, 시간이 지나면서 가스가 높은 곳으로 차오른다든지 하는 일부 장면들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가스는 대부분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 8월 부산 광안리 공중화장실에서 19살 여고생이 ‘황화수소’라는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져 한달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달 2일에는 대구 경상여고에서 원인 불명의 가스 노출 사고로 학생과 교직원 180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로 인한 사고다.
또한 그는 구조 신호를 보낼 때 영화 속 장면처럼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체력이 빨리 소진될 수 있는 데다, 주변에 흙먼지가 날아다닌다면 이를 마셔서 폐에 이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 소장에 따르면 구조 요청을 할 때는 신발을 벗거나 딱딱한 도구를 이용해 철판이나 나무를 두드려 소리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 좋다. 빈 캔(Can)을 이용해 간단히 호루라기를 만들어 쓸 수도 있다(영상 참고).
영화 속 주인공 가족이 유독가스를 피해 옥상으로 대피하는 장면에서도 한가지 유의할 사항이 있다. 요즘 건물들의 옥상 출입문은 관리 상 목적으로 대부분 잠겨져 있긴 하지만, 화재 경보기가 울리면 자동으로 열리는 자동개폐장치가 설치된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상 상황 시 옥상으로 대피하려면 먼저 화재 경보기를 찾아 경보를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옥상 출입문 자동개폐장치는 국토교통부가 2016년 마련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신축 건물의 경우 의무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다만 여전히 기존 건물이나 다가구주택 등은 옥상문 개방 의무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독가스가 퍼지는 상황에서 남녀 주인공이 방독면을 쓰고 탈출하는 장면에서도 꼭 체크해야 할 내용이 있다. 남자 같은 경우에는 군대와 예비군, 민방위 훈련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방독면을 쓰는 연습이 어느정도 숙달돼 있어 바로 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이나 아이들은 막상 방독면을 쥐어주면 바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왕좌왕하다보면 골든타임이 지나가버려 피해가 커진다. 우 소장은 “지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여성들의 사망률이 남성의 두 배였다. 남자들은 손수건 등으로 코를 막고 자세를 낮추는 등 생존법을 활용한 반면 여성들은 그러지 못했다”면서 “정부기관이나 소방서 등에서 여성과 아이들을 상대로 재난 안전 교육을 체계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실제 유용한 영화 속 재난 대처법들
영화 속 명대사인 ‘따따따, 따아 따아 따아, 따따따’는 실제 구조 현장에서 쓰이는 ‘모르스 신호’다. 두드리는 소리나 스마트폰 플레시를 이용해 SOS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속도는 상관없을까? 우 소장은 “원래는 천천히 길게 해줘야 하는데, 영화 장면처럼 빠르게 해도 전문가들은 다 알아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난 상황이 닥치자 여자 주인공은 치마와 구두를 벗고 서랍에서 운동화와 운동복을 꺼내 입었다. 우 소장은 “평소에 편안한 바지와 운동화를 사무실 등 직장에 준비해두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비상 상황 발생 시 안전지대로 빠르게 대피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체력’이라고 강조했다. 평소에 훈련이 안 되어있다면 빌딩 10층 계단 내려오는 것도 힘들어 다리가 아프고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남자 주인공이 아픈 누나를 위해 대걸레 대와 테이블보로 임시 ‘들것’을 만든 것도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재난 대처법이다. 또한 두 주인공이 유독가스 노출을 막기 위해 쓰레기 봉투와 테이프를 이용해 온 몸을 칭칭 감고 나타나는데 이 장면 역시 유용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재난 현장에서는 유독가스 뿐만 아니라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 여름에도 밤과 새벽에는 기온이 내려갈 수 있으므로 비닐봉투나 주변의 천을 이용해 몸을 감싸는 등 체온 유지가 필수라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옥상에 대피한 주인공네 가족들이 노래방 기계 마이크를 들고 ‘따따따’를 다같이 동시에 외치는 장면이 있다. 우 소장은 “재난 현장에서 탈출할 때도 요령이 있는데, 바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갑자기 비상 상황이 생기면 사람들은 당황하고 호흡이 빨라질 수 있는데 다같이 노래를 보르면 동지애도 생기고 침착해지기 때문에 탈출 시 많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우 소장은 “사망자 수만 2,606명이 발생한 미국 9.11 테러 때,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던 모건 스탠리 사 직원 2,700여 명은 대부분 무사히 탈출하기도 했는데 그 비결이 바로 노래였다”고 덧붙였다.
■ 생활공간 대피로 확보하고 생존배낭 챙겨두는 등 실천 필요
우 소장은 평소 카페나 식당, 영화관 등을 갈 때 대피로를 미리 생각해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그마한 통로 하나도 놓치지 말고 봐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비상 상황 시 탈출하려는 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게 되면 압사 사고 등 2차 사고 우려도 커지는데, 이때 다른 통로를 알고 있다면 탈출이 수월해 질 수 있다.
또한 방독면과 양초, 라이터와 함께 초콜렛 등 먹거리, 생수, 비닐봉투, 라디오, 무전기, 손전등, 칼, 담요 등 72시간 생존이 가능한 생존배낭을 챙겨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독면은 가족 구성원 수대로 꼭 구비해두고 평소 방독면 착용법이나 소화기 사용법, CPR(심폐소생술) 방법 등을 훈련 기관이나 영상 자료 등을 통해 배워두는 것도 추천했다.
우 소장은 “꼭 도시재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산 속에서 조난을 당하는 경우 등 우리 주변에서 위기 상황이 쉽게 발생한다”면서 “최근에도 산 속에서 11일 만에 무사 구조된 조은누리 양 사례처럼, 생존법을 알아둔다면 나중에 꼭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육군 특전사 출신인 우승엽 소장은 국내에 ‘생존 배낭’ 개념을 처음 알린 재난안전 분야의 민간 선구자라 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흔한 ‘도시재난 생존전문가’라는 직업 타이틀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2010년부터 ‘생존21’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도심 속 재난 상황, 특히 건물 붕괴, 정전, 지진 등 한국형 재난 생존법을 연구해 ‘재난시대 생존법’이란 책으로 엮었다. 서울소방본부 등 정부기관에서 자문위원 활동을 한 바 있고 각종 강의와 방송 출연, 영화 자문,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도시재난 생존법을 설파하고 있다.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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