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벌어진 한일 갈등의 골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일본 정부 대변인이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이 한국 책임이라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8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8일 민영방송 TV아사히계 <선데이 LIVE !!>에 출연해 “(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관련해서) 일한 청구권협정은 조약”이라며 “조약이라는 것은 각각 나라의 행정, 입법, 사법, 재판소(법원)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이 지켜야 한다. (한국 측은) 거기를 벗어났다”고 말하며 이 같이 언급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위반하는 경우의 규칙은 양국이 우선 협의를 하고 안되면 제3국을 넣어서 중재”하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절차를 밟고 있으나 한국은 응하지 않고 있다”며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기본 노선을 깨는 것은 일본으로서도 이상하다”며 일본 정부는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도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보낸 기고문에서 한국이 협정에서 했던 약속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을 한국에게 돌리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스가 관방장관의 이날 발언은 한국이 협정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그간의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또 징용 문제를 둘러싼 한일 대립이 최근에 첨예해진 직접 원인에 제대로 주목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기업이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명령이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은 협정이 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포함하고 있을 때 성립한다. 하지만 협정에 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이 포함되는지가 쟁점이 된 재판에서 한국 대법원은 협정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협정 내용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 권한은 삼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법원에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징용 문제에 관한 최근 한일 갈등은 한일 청구권 협정의 준수 여부가 아니라 이 협정을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양국의 견해 차이로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스가 관방장관이 협정에 관한 시각 차이 대신 협정 준수 여부에 초점을 맞춰 발언한 것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발신하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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