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벌레 공포증’에 시달릴 뻔했다. 베테랑 골퍼 폴 케이시(42·잉글랜드)의 이야기다.
케이시는 8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끝난 유럽프로골프 투어 포르쉐 유러피언 오픈(총상금 200만유로)에서 짜릿한 1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홀에서 추격자들의 버디 퍼트와 이글 퍼트가 살짝 빗나가면서 연장전에 가지 않고 승부를 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긴장된 순간은 이틀 전에 발생했다. 케이시는 2라운드 5번홀에서 2.4m 버디 기회를 맞았다. 퍼터로 친 볼은 굴러가다 왼쪽으로 살짝 방향이 바뀌었고 홀 가장자리를 타고 떨어져 버디로 연결됐다. 경기를 마친 케이시는 경기위원장으로부터 5번홀에서 퍼트한 볼이 벌레 위로 굴러갔다는 설명을 들었다. 움직이고 있는 볼이 동물에 의해 방향이 바뀌거나 멈춰진 경우를 규정한 골프규칙 11조에 따르면 플레이어는 스트로크를 취소하고 다시 스트로크를 해야 했다. 해당 규칙은 예컨대 퍼트한 볼이 퍼트라인상을 움직이던 개나 새에 맞을 때와 같은 불이익을 없애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조항이다. 경기위원장은 이 벌레를 동물로 해석한 것이다. 다시 플레이하지 않고 다음 홀을 경기한 케이시는 실격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케이시는 “모르고(unknowingly)” 볼을 쳤다고 대답해 페널티를 면할 수 있었다. 케이시는 기이한 룰 상황을 모면한 뒤 “어쨌든 벌레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며 웃어넘겼다.
지난 2011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신한동해 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세계랭킹 14위 케이시는 4라운드에서 3타를 줄여 최종합계 14언더파 274타로 정상에 올랐다. 2014년 KLM 오픈 제패 이후 5년 만에 거둔 유럽 투어 통산 열네 번째 우승이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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