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은 사법농단 사태를 불러온 근본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들어 대법원에 사법행정자문회의가 구성됐지만 설치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벌써부터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자문위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뜻에 맞는 사람들로만 채워져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법관 위원들은 물론 절반도 안 되는 비(非)법관 위원 인사에까지 김 대법원장의 입김이 반영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법조계 곳곳에서는 지난 9일 김 대법원장이 내놓은 사법행정자문회의 위원 구성이 ‘민주적 자문기구’라는 취지에 어긋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총 10명의 위원 가운데 김 대법원장 본인인 위원장과 판사 5명(전국법원장회의 추천 2인·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3인) 등 총 6명이 김 대법원장 스스로 인사권을 쥔 법관인데다 그나마 김 대법원장을 견제할 수 있는 4명의 비법관 위원들도 불투명한 선발 과정을 거쳐 입성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4명의 비법관 위원 중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까지 김 대법원장이 직접 지명한 점이 도마에 올랐다. 애초 김 대법원장이 공포한 규칙안에는 대법원장이 비법관 일부를 직접 뽑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김 대법원장은 어떤 상향식 절차를 거쳐 이 소장을 위원으로 선정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전체 위원 10명 가운데 김 대법원장 직권의 영향을 받는 인사가 무려 7명에 달하는 셈이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박균성 한국법학교수회장, 김순석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나머지 비법관 위원 3명도 김 대법원장이 후보 추천을 의뢰한 기관 수장이 자신을 ‘셀프 추천’해 그대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됐다. ‘학식과 덕망이 있는 국민’이면 누구나 위원이 될 수 있다고 기준을 정해놓고 결과적으로 김 대법원장이 특정 기관장만 콕 집어 위원으로 위촉한 꼴이 됐다. 이들 위원의 임기는 총 2년이며 비법관들은 연임도 가능하다.
사법행정자문회의의 이 같은 졸속 구성은 7월 김 대법원장이 9월에 첫 회의를 열겠다고 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법관 위원 4명을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선발할지도 정하지 않은 채 빠듯한 일정부터 공언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원 자체개혁안의 핵심내용 역시 사법행정자문회의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법원 셀프 개혁’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제5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사에서 이에 대해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사법부 사상 최초로 사법행정을 수평적 회의체에서 수행하는 시발점이자 사법행정제도 변화를 대비한 시금석”이라고 자평했다.
한편 대법원은 같은 날 법원행정처 비법관화를 추진하겠다며 국제심의관·정보화심의관·법무담당관·사법지원심의담당 직위를 외부에 개방하고 내년 1월 임용을 목표로 채용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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