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각료 19명 중 17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지난 2012년 2차 집권 이후 최대 규모다. 아베 총리는 ‘회전문 인사’ ‘친구 내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극우 성향을 공유하는 최측근들로 요직을 채우며 한국과의 ‘역사전쟁’과 자신의 숙원인 ‘전쟁 가능 국가’를 위한 개헌에 힘을 쏟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나타냈다. 11일 개각 발표 이후 아베 총리는 도쿄 소재 총리관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일본을 위해 자민당 창당 이래 오랜 비원(悲願)인 개헌에 도전해 나갈 것이고,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임기 말까지 본격적인 ‘개헌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날 일본 정부는 19명의 각료 중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제외한 17명의 각료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다만 “정치의 계속성·안정성을 중시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예고대로 최대 규모의 인사에서 아베 정권의 색채는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 극우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거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전에서 선봉장 역할을 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내각에 남았으며, 새로 입각한 각료 13명도 대부분 극우 성향을 가진 측근들로 외교안보 측면에서 노선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찌감치 언론을 통해 예고된 대로 아베 총리의 최측근이자 미일 무역협상에서 두각을 나타낸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상이 외무상으로,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등을 놓고 외교적으로 한국과 대립의 수위를 높여온 고노 다로 외무상이 방위상으로 중용됐다. 또 대한(對韓) 수출규제 정책을 주도한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요직인 자민당 간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향후 한국과의 외교 분쟁에서 당내 협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경제산업상으로 발탁된 스가와라 잇슈 자민당 국회대책 수석부위원장은 이번에 새로 등용됐지만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부정한 극우 인사로 한국과 역사문제에 관한 일본의 노선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국제법에 토대를 둔 한국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정부 방침은 일관된 것이며 새로운 체제에서도 아주 조금도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개각 이후에도 기존 생각에 변화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아베 총리는 특히 우익 성향의 강경파 측근을 대거 발탁한 이번 내각을 기반으로 오는 2021년 9월 임기 만료까지 본격적인 개헌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문부과학상으로 임명된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아베 총리의 측근 중 측근인 특별보좌관 출신으로, 아베 총리를 대신해 한국의 광복절이자 2차 세계대전 패전일 등에 아베 총리 명의의 공물을 들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온 인물이다. 특히 그는 정권 차원의 교과서 개입 실무를 담당하며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난징 대학살 등을 기술하는 방식을 문제 삼으며 출판사를 압박하는 일을 주도했다.
법무상에 등용된 가와이 가쓰유키 자민당 총재외교특보 역시 ‘초계기-레이더’ 갈등,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한국 전체에 ‘일본에 대해서는 무엇을 해도 다 용인된다’는 분위기가 판을 치고 있다”는 등의 망언을 되풀이해온 인물이다. 총무상으로 재입각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나 자신은 ‘침략’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무라야마 담화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망언을 해왔다.
이밖에 영토담당상과 저출산문제담당상을 함께 맡게 된 에토 세이이치 총리 보좌관도 올 8월 “과거 일본에서는 한국을 매춘관광으로 찾았는데 나는 하기 싫어 잘 가지 않았다”는 망언을 일본을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하기도 했다. 그 역시 1993년 아베 총리가 초선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뜻을 함께한 ‘동지’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개각에서 ‘포스트 아베’로 평가받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이 환경상에 전격 발탁됐다. 그 역시 지난달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익 정치인으로서 아베 새 내각의 전체적인 기조와 별 차이가 없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대중성이 높은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며 개헌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인사로 평가된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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