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보름달 같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향을 찾아 부모님과 친척들을 만나는 민족의 큰 명절이다.
한편으로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추석을 전통의 명절이라기보다 ‘길게 쉴 수 있는 빨간 날’로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올 추석은 주말을 포함 나흘밖에 못 쉬어 손해를 본 느낌을 받는다. 현 정부 들어 임기 첫해였던 2017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임시공휴일을 하루 지정하면서까지 열흘간의 긴 추석 연휴를 보냈던 것과는 큰 차이다. 지난해 추석도 주말과 겹쳐 닷새간 쉬었다. 이는 명절 앞뒤 사흘 사이 일요일이 포함되면 적용되는 대체휴일제 덕분이었는데, 토요일과 겹친 올해는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
휴가 기간이 길면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국가적으로도 소비촉진 효과가 있다. 휴일이 하루 더 늘면 여행 지출이 432억원, 전 국민의 소비가 2조원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노동자의 만족도까지 포함하면 최대 19조원의 효과가 생긴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기업들의 생산손실도 고려해야 하므로 무작정 휴일 숫자를 늘릴 수는 없다.
올 추석은 유례없는 경기 부진 속에서 맞게 됐다. 명절 보너스인 상여금도 줄어들어,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 결과 올 추석 상여금 지급을 계획한 업체가 65%로 지난해보다 5% 줄었다. 대기업은 2% 정도 감소한 데 비해 중소기업은 6%가량 줄었다.
상여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르바이트생의 65%, 직장인의 45%가 추석 연휴에도 일한다. 연휴에도 출근하는 이유는 직장이 정상 운영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57%,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서라는 경우도 40%나 됐다. 정부가 추석 민생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지난해에 비해 3조원 확대된 근로장려금(EITC)을 추석 전에 지급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서민들이 추석을 쇠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얇은 주머니 사정으로 소비자들의 지출 규모도 축소됐다. 올해 직장인이 추석에 지출하는 평균 경비는 기혼자가 49만원으로 지난해 60만원 대비 약 20% 감소했고, 미혼자는 29만원으로 지난해 35만원 대비 6만원 줄었다. 이에 따라 명절 특수(特需)를 기대했던 추석 선물세트 판매나 마트의 매출도 신통치 않았다. 이마트는 올 추석 선물세트 중 5만원 미만 품목의 비중이 60%를 넘었고 홈플러스는 1만~2만원대 품목의 매출이 85% 늘었으며, 롯데마트에서도 치약·샴푸 등의 매출은 증가했지만 축산·수산·과일 등의 매출은 감소했다고 한다.
추석이 여름 기운이 가신 지 얼마 안 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와서 추석 경기를 띄우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며, 추석 전 주말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링링, 추석 직전 일요일(8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도 체감경기를 위축시키는 데 한몫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정세 불안과 사회갈등도 문제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북한이 발사체를 쏘는 상황인데다 한미동맹은 원만하지 못하고 한일관계는 파열음을 내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국내 갈등도 커지고 있어 위정자들은 추석의 동향과 민심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에서는 긴 추석 연휴가 있는 2044년까지 살자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나처럼 그때까지 일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사람들에게는 그림 같은 얘기일 뿐이며 보다 더 현실적인 관심은 ‘내년은 어떨까’다. 내년 추석 연휴는 올해에 비해 하루 길어 5일간 쉬는데, 중국의 국경절 기간과 겹치게 돼 그로 인한 특수를 바라볼 수도 있으며, 거기에 혹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바람까지 이뤄진다면 올해보다는 훈훈한 추석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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