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 엉뚱하게 뒤섞인 그림들은 종종 ‘뭘 그린 것이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등의 푸념을 마주하기 일쑤다. 이 같은 그림은 형상이 드러내는 고정관념, 보이는 것만 보려 하는 수동적 태도 등을 걷어내고 접근해야 한다. 좀 어렵다 싶지만 공들인 만큼의 깊은 맛이 있고, 시(詩)를 읽는 듯한 여운이 크다. 신화적 느낌을 풍기는 그림 속 고대 조각상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암시하는 반면 곁들여 등장하는 거울, 목 아래 부분만 등장하는 몸뚱이 등은 우리에게 ‘자아성찰’을 권한다. 뭔가를 보려고 안달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라는 조언 같다.
회화 그 자체의 본연적 역할을 탐구해 온 화가 조셉 초이(51)가 4년 만의 국내 개인전을 열고 있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이유진갤러리에서다.
작가는 지난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갔고 이후 줄곧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형태는 일그러지고 붓질은 거침없으니, 그 틈바구니에서 말로 채 드러내지 않은 욕망의 몸부림이 읽힌다. 살결은 낡고, 표정은 찐득하다. 얼굴은 인간을 드러낸다기 보다는 오히려 뭔가를 숨기려는 가면처럼 보인다. 작가의 작업방식은 다분히 즉흥적이다. 펼쳐놓은 캔버스에, 선문답 던지듯 이미지를 던져놓고 거기서 연상되는 또 다른 이미지를 배치하며 화면을 구성한다. 때로는 연상작용을 수습하듯 또다른 것을 덧그리고 때로는 지우고 헝클어놓기도 한다. 사전 밑그림도 없었고, 딱히 마침표도 없는 그림이다. 그리려는 대상이 아니라 그리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작가는 “하루하루 그리는 행위는 계속되고 마르고 레이어(층)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가 완성되는 것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림이 어렵다고 감상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작품 앞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장면,단어 등을 곱씹는 순간 그림은 곧 감상자의 속내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미지에 덮여있던 것들을 한 꺼풀씩 벗겨 낼 때 예상 못한 깨우침에 다다를 수도 있다. 전시 제목은 ‘스타팅 투 시크(Starting to Seek)’. ‘찾기의 시발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전시에서 미(美), 욕망, 자아의 근본을 작가와 함께 탐색해 볼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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