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물가지수 산출 이래 처음으로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하락(-0.04%)한 것을 둘러싸고 우리나라가 디플레이션과 불황 기조에 들어섰다는 측과 성급한 결론이라는 측 사이에 논란이 뜨겁다. 수요 측면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소매판매와 소비자심리지수 하락, 그리고 대외적으로 9개월째 이어지는 수출 부진이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의 주요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공급 측면을 강조하는 정부 측에서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0.9%를 기록한 점을 고려할 때, 8월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폭염으로 농작물 가격폭등으로 인한 기저효과에 주로 기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플레이션 상태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물가하락이 2~3년은 지속돼야 한다. 따라서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이 도래한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거시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갭(실제성장률-잠재성장률)이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물가지수 하락을 디플레이션이 초래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1990년대 7~8%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6~2020년은 2.7~2.8%로 낮아지고 2026년 이후에는 1%대로 떨어지면서 저성장 기조가 고착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도 조만간 일본형 디플레이션과 불황에 직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우리 거시경제는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간소비는 가계부채 급증,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 주식시장 정체 등으로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업 설비투자도 각종 규제 및 투자환경의 불확실성 상존, 경직적 노동시장과 친노조 정책 등으로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부지출 확대를 통해 내수를 지탱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출의 경우 미중 무역분쟁, 중국의 수입대체 고도화에 따른 대(對)중국 수출의 지속적 감소, 일본의 수출규제, 선진국의 무역보호조치 강화추세로 인한 무역환경 악화, 반도체 수출 급감 등으로 향후 크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생산 측면뿐 아니라 소비 측면에서도 축소지향적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복지지출이 급속히 확대돼 재정 부담이 가중되면서 재정건전성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각종 연구소에서 올 경제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등 우리 경제에 대한 전망이 날로 어두워지고 있다.
자산 버블 붕괴로 야기된 투자 침체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핵심적 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설픈 소득주도 성장정책보다 기업 투자를 대폭 이끌어내기 위한 투자 친화적 정책으로의 신속한 전환이 요구된다. 과감하고 지속적인 규제개혁과 감세, 총요소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R&D)에 대한 효율적 지원, 시장 주도하에 신속한 산업 및 기업구조조정이 추진돼야 한다. 또 산학협동 강화와 대학교육 프로그램의 4차 산업혁명과의 적합성 심화 등이 요구된다. 이와 더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축소하고 소득재분배를 개선하려면 고용안정화를 위한 실업보험을 점차 강화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더 이상 단기적인 선심성 정책을 남발할 여유가 없다. 고통스럽지만 하루라도 빨리 미래세대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투자와 구조조정을 추진할 때 비로소 디플레이션과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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