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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정권 바뀌자 '복지 블랙홀' 빠져…재정건전성 헌신짝 된 지 오래

<중기재정운용계획 이대로 괜찮은가>

매년 누더기 수정에 5년단위 계획 유명무실

前정부땐 국가채무비율 40% 마지노선 간주

文정부선 '재정적자=투자'로 여겨 지출 급증

경기 고꾸라지는데 빚 늘리는건 도덕적 해이

재정준칙 법제화·국회심사제 개선 등 나서야





“재정은 국가 경제의 마지막 보루다. 국가채무 비율 40%는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 예산편성과 재정관리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경기 부양 등을 위해 사실상 연례행사가 돼버린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거부감이 컸다. 웬만하면 추경 편성은 피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이 원칙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대신 연일 재정 확장의 필요성을 외치는 데 여념이 없다. 당시 예산과 재정을 담당하던 공무원들이 그대로 같은 업무를 맡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대내외 경제환경 악화와 저출산·고령화 등에 따른 잠재 성장률 하락 등 큰 틀에서 거시경제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재정을 바라보는 정부의 관점 변화다. 박근혜 정부는 비록 가계부채 관리에는 실패했지만 관리재정수지와 국가채무 비율 등 재정 건전성 관리에는 엄격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복지 확대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정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수지 악화를 선투자 개념으로 보고 있다. 재정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바뀐 것이다.

한 해의 재정운용은 매년 5월 열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방향이 결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채무 비율 40%의 근거는 뭐냐”고 되묻던 바로 그 회의다. 실제 문 대통령의 발언 직후 정부의 재정운용 방향은 확대 재정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국가채무 비율 40%라는 마지노선도 무의미해졌다. 그 결과는 2020년도 예산안과 중기재정운용계획(2019~2023년)에 그대로 반영됐다. 정부의 재정운용 방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점검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수립된 최근 7년간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비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유명무실해진 중기재정운용계획=정부는 매년 예산을 편성한다. 1년 단위로 하는 예산 편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장기 시계에서 재정운용 전략과 재원배분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5년 단위의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한다. 중기재정운용계획 수립의 가장 큰 목적은 재정운용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높이는 것이다. 중기재정운용계획에는 5년 동안의 세입과 세출은 물론 재정수지·조세부담률·국가채무 등의 전망과 계획이 담겨 있다. 예산안과 함께 발표되며 국가재정법에 따라 해당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게 돼 있다.

문제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이 이번 정부 들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매년 수정됐지만 재정운용의 효율성과 건전성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에 중기재정운용계획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다. 그러나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상황이 달라졌다. 중기재정운용계획은 매년 12월 기획재정부가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지침’을 마련해 각 부처에 통보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참고일 뿐 매년 5월 대통령이 주재하고 국무위원, 여당 수뇌부 등 당정이 총출동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큰 그림이 그려진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의중에 따라 재정운용의 방향이 사실상 결정되는 것이다.



◇수입 줄어드는데 쓸 돈은 눈덩이=중기재정운용계획의 재정지출과 재정수입은 앞으로 5년 동안 재정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매년 재정지출 증가율(2.6~5.0%)이 재정수입 증가율(4.0~6.5%)을 밑돌았다. 균형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재정지출 증가율을 재정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하며 재정 총량을 관리했다”며 “복지 등 의무지출을 늘려야 하는 경우에도 그에 상응하는 세입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재정지출 증가율(5.8~7.3%)이 재정수입 증가율(3.9~5.5%)을 매년 웃돌고 있다. 재정지출 증가율도 5.8%→7.3%→6.5% 등 전임 정부 때보다 크게 높다. 2017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는 재정지출을 경상 성장률보다 높였고 2018년 이후에는 경상 성장률과 재정수입보다 높였다. 전임 정부에서 보이던 ‘재정 총량 관리’ ‘재정준칙’ 등의 표현도 사라졌다. 정부 관계자는 “매년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하다 보니 해당 회계연도 중기재정운용계획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출이 늘어나는 반면 수입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국세수입 연평균 증가율은 6.8%(2017~2021년)→6.1%(2018~2022년)→3.4%(2019~2023년)로 2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들어오는 돈은 적은데 써야 할 돈이 많으니 적자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는 구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매년 증가하는 이유다. 경기가 고꾸라지는데 대책 없이 빚을 계속 늘리는 건 도덕적 해이다.

◇불어나는 국가채무는 결국 국민 부담=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운용으로 재정 건전성 지표는 경고등이 켜졌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1.9%에서 내년에 -3.6%, 2023년에는 -3.9% 수준까지 악화한다.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올해 740조8,000억원에서 2023년에는 1,061조3,000억원까지 늘어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같은 기간 37.1%에서 46.4%로 껑충 뛴다.

2017년 기준 국가채무 비율은 미국이 105.1%, 일본이 224.2%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선진국과 비교해 굉장히 양호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공기관 부채와 공무원 연금 등 충당금까지 포함하면 국가채무 비율은 이미 GDP의 100%에 육박한다. 게다가 기축통화국인 미국, 세계 최대 채권국인 일본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다.

나랏빚이 늘면서 국민 1인당 세금부담도 매년 꾸준히 증가한다. 내년 국세 수입은 292조원, 지방세 수입은 96조3,000억원. 이를 내년 추계 인구인 5,178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세금부담은 749만9,000원이다. 1인당 세금부담은 2023년에는 853만1,000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보다 무려 110만원이 늘어난다.

◇재정준칙 입법화, 국회심사제도 개선해야=중기재정운용계획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실행 여부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역대 정부는 매년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할 때 재정수입과 국세수입은 과다 예상하고 재정지출은 과소 예상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이 매년 예산과 연동돼 내용이 수정되는 ‘연동방식’으로 수립되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5년간 재정운용을 전망하는 ‘예산안 부속서류’로 전락했다”며 “중기적 시계 관점에서 목표가 불분명하고 실효성을 높일 정책 수단이 마련되지 않아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시하는 개선 방안은 ‘고정방식’과 ‘변동방식’의 혼합이다. 5년 단위 계획에서 초반부는 고정방식으로 구속력을 강화하고 후반부는 경제 상황이나 재정 전망 변동 등을 반영한 연동방식으로 탄력적으로 보완하는 방법이다.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재정준칙의 법제화와 국회 심사제도의 개선 등의 의견도 제시됐다. 재정준칙은 재정수지·재정지출·국가채무 등 재정 총량에 일정한 목표를 부여하고 이를 법률로 준수하는 방식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 국가부채 비율은 45%, 재정적자 비율은 3%로 제한하고 ‘번 만큼만 쓴다(Pay as you go)’는 미국식 재정준칙을 담은 ‘재정 건전화 법’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별다른 관심도 없는 것 같지만 혹시나 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과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이미 이를 무너트렸기 때문이다. /김정곤 논설위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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