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737번지 일대. 통일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가칭 통일중학교 건설을 위한 학교용지다. 지난 1996년 4월 인근의 통일초등학교 부지와 함께 중학교 부지로 지정된 지 23년이 흘렀다. 중학교 건설을 위한 부지 면적은 1만4,207㎡다. 현재 이 학교용지는 지금도 학교가 지어지지 않은 채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학교 대신 잡초와 잡목이 우거지고 이 토지의 소유자가 LH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더 이상 중학교가 설립되지 않는다. 파주교육지원청이 2016년 11월 파주시청에 학교를 더 이상 건설할 계획이 없다며 ‘학교용지 해제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노태우정부 ‘평화도시’ 계획따라 지구지정..정권바뀌자 방치
사업지연에 인구 뚝..교육청 “학교 설립 불가” 용지해제 신청
초등교 졸업 땐 6㎞ 가량 떨어진 중학교 배정 돼 불편 잇따라
◇잡풀 우거진 중학교 건설 예정 부지…학생들은 5㎞ 떨어진 중학교 통학
통일초등학교 4학년생이 학교를 나서는 오후2시께.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엄마들이 삼삼오오 통일초등학교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어 자녀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전국 초등학교 정문 앞과 다르지 않다. 통일초등학교가 다른 초등학교와 다른 점은 초등학교 정문이 잡초 등이 우거진 흉물스런 땅을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의 더 큰 근심은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 즈음에는 이사를 떠나야 한다는 점이다. 중학교 건설을 위한 학교용지가 남아 있지만 직선거리로 5.33㎞ 떨어진 탄현중학교로 아이가 배정되기 때문이다.
기자와 만난 한 학부모는 “탄현중학교 학생 대부분이 여기 통일초등학교 인근에 거주한다. 주민들이 아이들 등하교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편도 좋지 않아 중학교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더니 ‘그러면 탄현중학교가 학생이 없어 폐교된다’고 한다”며 “그렇다면 탄현중학교를 이쪽으로 이전해달라고 말했더니 ‘그것도 안 된다’고 하더라. 여기에 중학교가 지어질 줄 알고 이사 온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이제 와서 이러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이어 “중학교를 못 짓는다고 하면 애들을 데리고 (중학교 인근으로) 나가야 한다”며 “여기서 중학교를 못 보낸다고 하면 이사를 가야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탄현초등학교 앞에서 학생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김종호씨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법흥리) 주민들이 (중)학교를 (가칭 통일중학교 부지 쪽으로) 옮기려고 애를 쓴다. 탄현면에서 이쪽 동네(법흥리)가 사람들이 가장 많다”며 “탄현중학교 학생 대부분이 이쪽 동네 사람들이다. (탄현중 인근의) 탄현초등학교 전 학년 재학생이 60명이 안 된다”고 학교 건설과 학생 배치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개발 사업 변경 겹치며 불가능해진 중학교 설립
파주교육지원청의 중학교 설립에 대한 입장은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일대 주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명확했다. 통일동산지구 개발 사업에 대한 변경과 지연 등으로 당초 기대한 인구 유입과 학령인구 조건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만큼 가칭 통일중학교 설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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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교육지원청의 한 관계자는 “탄현면 법흥리의 통일초가 개교하기 이전에 이미 인근에는 삼성초와 갈현초·탄현초·검산초 등 4개의 초등학교가 운영 중이었다”며 “1996년에 통일동산지구 개발 계획을 수립하면서 법흥리에 통일초와 통일중 설립을 위한 학교용지를 확보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도저히 중학교 설립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통일초등학교도 당초 24학급 규모로 계획됐지만 현재 18학급만 운영 중”이라며 “탄현면에 있는 탄현중학교 한 곳만으로도 인근 4개 초등학교 졸업생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추가 건설이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었다. 현재 탄현면의 초등학교는 삼성초(6학급)와 탄현초(6학급), 갈현초(6학급), 통일초(18학급) 등으로 초등학교 졸업생 모두를 탄현중으로 배치할 수 있는 만큼 중학교 신설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1996년의 중학교 부지 확보는 잘못된 행정인가. 파주교육지원청은 1996년 중학교 부지 지정 당시와 현재의 중학교 설립을 위한 요건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파주교육지원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중학교를 건설하기 위해 최소 8,000~9,000가구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야 가능하다”며 “4,500~5,000가구 단지에 초등학교 1개, 9,000~1만가구 단지에 중학교 1개가 설립되는 식”이라고 전했다.
◇주민들만 분통
통일동산지구의 세부 계획을 살펴보면 전체 부지면적(552만7,959㎡) 중 주거용지는 43만6,050㎡로 단독주택용지는 39만2,731㎡, 연립주택용지는 3만2,295㎡다. 현재 탄현면에는 법흥리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2개(510가구, 570가구)와 1개의 빌라(282가구)만 조성된 상태다. 나머지는 단독주택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결국 노태우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통일동산지구는 아파트와 연립을 합쳐 1,360가구 규모다. 연립주택은 중학교 문제로 매각을 하기 위해 비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무리하게 초등학교 1곳과 중학교 1곳 설립을 위한 학교용지를 지정한 셈이다.
인근의 관광휴양시설용지(136만2,308㎡) 조성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법흥리 일대에는 콘도를 건축하던 중 자금 사정과 사업성 악화로 공사가 중단된 채 유치권 설정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상황이다. 관광단지 조성이 원만하게 이뤄지면 인구 유입으로 이어져 중학교 신설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파주시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그 당시에는 지자체의 동의나 허가 없이 중앙정부가 개발지구를 지정할 수 있었던 상황이어서 파주시는 개발 계획 수립에서 배제돼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노태우 정부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뭐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이 수십년째 사업이 답보상태를 보이면서 주민들만 결국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의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된 통일동산지구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일대의 통일동산지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면서 제시된 평화도시 건설 구상의 일환으로 조성된 토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군사적 경쟁을 통한 북한과의 대립 대신에 북한과의 평화적 교섭으로 통일을 추진하자는 방안이 발표되면서 지정된 곳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지구 지정을 발표하면서 “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 열정과 의지를 결집하고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면서도 민주적인 통일관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의 기본 방향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일대에 평화도시를 건설하고 1,000만 이산가족의 망향한을 달래는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또 통일에 대한 의지와 사명감을 일깨워주는 통일과 안보의 교육장으로 활용하면서 대중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포함됐다.
파주시청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통일동산지구의 개발 방향이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공원묘지와 만남의 장소 제공, 통일 이후 교류 공간 조성 등이었다”며 “워낙 예전에 추진돼 관련 자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통일동산지구는 그 당시 건설교통부가 추진하고 한국토지공사가 사업시행자로 추진한 사항으로 지자체인 파주시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현재는 지구 지정 당시의 목표보다는 효과적으로 토지를 개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많이 선회해 민간 기업의 개발 계획도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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