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은 반공영화도, ‘국뽕’ 영화도 아닙니다. 좌우 이념 중 어느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어린 민초 영웅들이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쳤던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배우 김명민(사진)은 최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나 오는 25일 개봉 영화 ‘장사리’에 대해 편견 없이 봐달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국 전쟁 당시 희생된 학도병들에 대한 이야기에 특정 프레임이 덧씌워져 영화가 왜곡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학도병 722명과 장사리작전에 투입된 이명준 대위 역할을 맡았다. 영화는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경북 영덕군 장사리 해변에서 북한군의 이목을 교란하기 위해 펼쳐진 장사상륙작전이라는 실화가 바탕이 됐다. 이 작전에는 단 2주밖에 훈련받지 못한 평균 나이 17세의 학도병들이 투입됐다.
김명민은 우리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장사상륙작전을 이제라도 스크린으로 되살려 내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가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저도 그런데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이 더 실감 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이고 영화를 통해 장사리 영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름 없는 영웅들을 기리고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애국심 등 감성만을 자극할 것 같지만 이성적인 부분이 중심을 잡아 감동을 배가한다. 이 역할은 바로 김명민에 의해 이뤄진다. 그는 호소력 짙은 감성 연기로 눈물샘을 자극하면서도 때로는 감정선을 절제하며 영화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리더 이명준이라는 존재도 배우 김명민의 아우라 덕에 살아난다. 그는 “이명준의 이성적인 면을 부각하기 위해 편집 과정에서 감성적인 부분들은 조금 덜어냈다”며 “영화의 주인공은 특정 인물이 아닌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목숨을 희생한 학도병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명민은 어떤 역할을 맡든 ‘복제’가 아닌 ‘원본’ 같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그는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순신의 고뇌를 눈앞에서 보여주는 듯 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천재적이지만 악명높은 지휘자 강마에, ‘하얀 거탑’에서는 성공만을 위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의사 장준혁 그 자체였다. ‘장사리’에서도 ‘진짜’ 이명준 대위 같다.
원로 배우 이순재도 그를 한국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꼽기도 했다. 그는 극찬을 받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칭찬과 격려의 차원을 넘어 민망함으로 다가온다”며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어느 순간 연기에서 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부터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며 “감독, 작가, 의사 등 지인 10명을 연기 모니터요원으로 삼아서 가차 없이 비판해달라고 했는데 이순재 선생님도 그 중 한 명”이라고 부연했다. 가장 쓰라렸던 비판으로는 ‘이번 역할 지난번이랑 똑같더라’라는 말을 꼽았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자’라는 신조를 떠올리며 자신에게 채찍을 가했다고도 했다. 특히 그는 들으면 누구나 아는 ‘김명민의 시그니처’와 같은 목소리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했다. 배역을 표현하는 데 한계와 제약이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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