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 프랑스 남부도시 에비앙 인근에 살던 한 남자가 카샤(Cachat) 샘에서 나오는 물을 3개월 동안 매일 마시고 요로결석을 치료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자 샘 주인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수(水)치료센터를 세우는 것. 1826년 샘터 자리에 센터가 들어서기 무섭게 스위스 부자들까지 줄을 섰다. 1878년 류머티즘·신장질환 등에 효과가 있다는 의학계 인증까지 더해지면서 수요는 급증했다. 요즘 30여개 샘에서 생산되는 에비앙 생수는 하루 약 600만ℓ. 우리나라 등 120개국에 수출되는 세계 최대 생수 브랜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지역은 생수가 보편화돼 있다. 그만큼 종류도 다양하고 경쟁 또한 치열하다. 이탈리아가 580여개 브랜드로 가장 많고 프랑스도 에비앙·페리에·볼빅 등 약 500개나 된다. 독일도 200개가 넘는다. 유럽보다 덜하지만 미국의 생수 역사도 100년이 넘는다. 가장 오래된 상표는 아칸소주에서 생산되는 ‘마운틴밸리 스프링 워터’로 1904년부터 미국 상원에 공급됐다. ‘폴란드 스프링’(메인주) ‘사라토가 워터’(뉴욕주) 등이 그 뒤를 이었고 현재는 200개 남짓의 브랜드가 팔리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생수 이력은 일천하다. 한시적이나마 일반에 생수 판매가 허용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다. 외국인들이 한국 수돗물 안정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시 허가했는데 올림픽이 끝나자 다시 금지됐다. 그러다 1994년 “생수 판매금지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이듬해 정부는 ‘먹는물관리법’을 제정해 생수 판매를 합법화했다. 다만 초창기에는 제품 이름에 생수·약수 대신 ‘광천음료수’ 등으로 명기하도록 했다. 소비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꼬가 트인 국내 생수 시장은 매년 10% 이상 성장해 시장규모가 1조원에 달한다. 대형마트·편의점 등 유통업계에다 식품업체도 속속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신규 고객을 잡으려고 대형마트들이 25일까지 생수 초저가 판매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이마트가 자체 브랜드 생수 2ℓ들이 6병을 1,880원에 내놓자 롯데마트·홈플러스가 200~300원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맞불을 놓았다. 업체들의 출혈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가격경쟁은 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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