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322억원을 해외로 빼돌리고 253억원의 국세를 체납한 혐의를 받는 고(故)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54) 전 한보그룹 부회장이 첫 재판에서 횡령 등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정 전 부회장 측 변호사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 전 부회장의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다. 법정에 출석한 정 전 부회장 역시 “변호인에게 일임한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횡령을 정 전 부회장이 주도하지 않았고 회사를 위한 것이었으며 횡령 피해도 사실상 모두 회복됐다는 점을 참작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를 운영하던 정 전 부회장은 외환위기의 발단이 된 ‘한보 사태’ 수사가 진행되자 1997년 11월 회사가 보유한 루시아석유 주식의 매각자금 322억원을 스위스에 있는 타인 명의 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당국의 허가 없이 외국으로 돈을 지급한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 가운데 60억여 원은 공범들이 정 전 부회장 몰래 빼돌린 것이라는 정 전 부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여 혐의액에서 제외했다.
정 전 부회장은 1998년 6월 서울중앙지검 조사를 끝으로 잠적했다가 21년 만인 지난 6월18일 파나마 공항에서 국제공조로 검거됐다. 검찰은 정 전 부회장이 출국 기록도 남기지 않은 탓에 공소시효 만료 이틀 전인 2008년 9월 그를 일단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기소 이후에도 정 전 부회장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재판은 열리지 못했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은 지난해 8월부터 원점에서 수사를 재개해 그가 A(55)씨 이름으로 캐나다 시민권자로 신분을 세탁한 정황을 포착하고 결국 검거에 성공했다.
정 전 부회장 재판부는 앞으로 3차례가량 변론을 더 진행한 후 심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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